2막 2장 ― 언어와 역사

처음으로 직립보행하는 인류의 시초에서

언어는 어떻게 탄생한 걸까요? 사실 아무도 모른답니다. 창언창안에서 중요한 것도 아니죠! 중요한 건 언어가 어떻게 갈라져 나가는가, 이것입니다. 가장 잘 연구된 인도유럽어족을 봅시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 인근의 평야 지대에서 살고 있던 고대 인도유럽어의 화자들은 서쪽으로는 유럽까지, 동쪽으로는 인도와 중앙아시아까지 퍼져나가며 자신들의 언어를 퍼트렸고, 이로 인해 인도에서 유럽까지 닿는 거대한 언어의 가족이 생기게 되었죠.

이런 언어의 계통 관계를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미 알고 있는 언어들을 바탕으로 그 과거 형태를 추론하고, 이들 언어가 얼마나 비슷한지, 비슷하면 그 공통 형태가 어떻게 생겼을지 추측하는 것입니다(이 방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나무위키의 “역사비교언어학”의 해당 문단을 참고하세요). 하지만 이런 방법을 우리가 적용할 필요는 없죠! 우리는 언어를 만드는 입장이니까요! (물론 세계 내의 언어학자의 입장을 알고 싶다면 알아봐야 하겠지만요) 우리는 언어가 어떻게 분화해 나가는지를 살펴봅시다.

언어가 분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1막 7장에서 말한 풍화와 똑같은 거죠.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 풍화를 겪고, 다른 무리는 겪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차이’가 생기니까요. 단순한 예를 들면, 중세 한국어에는 성조가 있었지만,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이 성조가 사라지는 변화를 겪었고, 영남에 사는 사람들은 이 변화를 겪지 않고, 대신 성조가 달라지는 변화를 겪었죠. 이런 게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대개는 지리적 거리에 의해 생기죠. 멀리 있거나, 산 너머 있거나, 하다못해 강 건너 있거나. 이런 지리적인 거리는 두 무리 사이의 교류의 약화로 이어지고, 교류가 약해지면 점점 서로와 안 비슷해지죠. 시간이 지나 변화가 쌓이고 쌓이면 차이도 쌓이고 쌓여 결국 다른 언어가 된답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생물의 진화와 비슷한 과정이죠!

물론 서울말과 영남의 말은 다른 언어가 아닙니다. 그러기에는 쌓인 차이가 너무 적죠. 그러나 이런 작은 차이 하나하나가 쌓이고 쌓이면 다른 언어가 되는 거랍니다. 그럼 이런 변화를 어떻게 적어내야 할까요?

먼저 한 언어를 만듭니다. 그다음에는 그 언어가 겪을 변화(풍화)들을 만들어 주세요!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한 언어에는 한 변화를, 다른 언어에는 다른 변화를 주기 시작하면 된답니다! 간단하죠? 그리고 이렇게 언어가 분화하는 시점을 역사적인 사건과 연관시키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예를 들면, 영어는 원래 네덜란드의 한 방언과 서로 말이 통하는, 방언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출신의 정복자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하면서 영어는 변화하게 되어, 더 이상 위의 방언과 말이 통하지 않게 되어버렸지요. 또는, 거대한 로마 제국이 붕괴하고 제국의 각 지역 간 교류가 끊기자 변화의 차이가 쌓이고 쌓이면서 라틴어가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등으로 분화된 것을 예시로 들 수 있겠네요.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방언연속체라는 개념입니다. 방언연속체는 말 그대로 방언들이 연속해서 있는 것을 말하는 거죠. 예를 들어 가로로 길쭉한 대륙이 있다고 해봅시다. 서쪽 끝에는 ‘기역’이라는 민족이 살고, 동쪽 끝에는 ‘히읗’이라는 민족이 살죠. 한 때 대륙 전체를 호령하던 제국이 있어서 모두가 갑자어라는 언어를 썼는데, 제국이 붕괴하고 나서 민족 간의 교류가 약해지며 언어가 서서히 분화해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옆에 붙어사는 민족들은 서로의 말을 여전히 이해하겠죠? 그래서 기역이 쓰는 말을 니은은 이해할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니은은 디귿을 이해할 수 있고, 디귿은 리을을 이해할 수 있고, 쭉쭉 이어져 피읖은 히읗을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기역은 히읗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이렇게 서로 옆의 사람들끼리는 말이 통하지만 떨어진 사람들끼리는 말이 안 통한다면, 이를 방언연속체라고 하죠.

방언연속체는 단순히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뿐만이 아닌, 한 민족이 퍼져나가면서 생기기도 합니다. 위에서 말한 인도유럽어족이 한 예시겠네요. 그럼 이런 현상을 어떻게 적어낼 수 있을까요?

쉽죠! 근처에 있는 민족끼리는 비슷한 변화를 겪게 하되, 조금씩 다른 변화를 겪게 하세요! 그럼 자연스럽게 방언연속체를 이룰 수 있답니다. 창작물에서 이런 것을 구현하기 좋은 설정으로는 판타지 세계에서 인간들이 퍼지며 다양한 언어로 분화되었다는 설정이나, 고대의 엘프 제국이 쓰던 언어가 지금은 각지의 유적에 사는 엘프들의 언어로 갈라져 나왔다는 설정쯤이 되겠네요. 

굳이 언어를 만들 정도로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1막 이상으로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으시다면 작중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이런 설정을 드러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저들은 ‘ㅜ’ 발음을 이상하게 하더군”이나, “저놈들은 ‘ㅂ’과 ‘ㅍ’의 차이도 모르나 보지?”라거나, “저 멀리 있는 병인 왕국의 언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 갑자 왕국과 병인 왕국의 중간에 있는 을축 왕국의 사람을 데리고 와야 해” 같은 다양한 대사를 통해 설정을 드러낼 수 있죠. 창작물 세계관의 사소한 붓 터치이려나요? 

변화와 그 변화가 쌓여 만들어지는 차이 외에도 언어가 변하는 다른 주된 이유가 있답니다! 바로 외래어죠. 튀르키예어를 볼까요? 오스만 제국 시절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강한 언어를 받은 튀르키예어는 다른 튀르크어족과 완전히 다른 어휘를 지니고 있다가,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난 다음 민족주의의 강한 영향을 받안 언어순화 운동 이후 다른 튀르크어족의 어휘들을 수입했습니다. 이렇게 문화적으로 우세를 지니고 있는 언어로부터 강한 영향(특히 어휘면에서)을 받아 친척 관계에 있는 언어와 크게 달라지는 경우는 세계 각지에서 흔하게 관찰되죠. 한국어와 영어에서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요, 각각 한문과 라틴어/프랑스어의 어휘를 많이 들여와 기존의 어휘를 잃어버렸죠. 

그럼 마지막으로 언어 분화에서 주로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볼까요? 이미 1막 7장에서 풍화의 대표적인 사례를 들긴 했지만, 언어 분화에서 주로 쓰일 정도로 큰 변화는 안 다뤘으니까요. 

먼저 자음의 변화입니다. 언어가 분화할 정도로 달라진다면 자음도 크게 달라지죠. 예를 들면 “ㄷ는 ㅌ가, ㅌ는 ㄷ가 되었다” 같은 변화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는 한국어처럼 자음의 3분류 체계가 있었는데(기준은 달랐지만), 한국어로 치면 ㅋ ㅌ ㅍ에 해당할 소리들이 각각 ㅎ ㅆ(th) ㅍ(f)로 바뀌게 되었죠. 물론 이건 언어가 분화한 사례는 아니지만, 자음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면에서 가져와 봤습니다. 

모음의 변화도 있겠죠? 모음은 특이하게 순환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ㅣ ㅔ ㅏ ㅗ  ㅜ의 다섯 모음을 지니던 언어의 각 모음이 ㅏ ㅗ ㅜ ㅣ ㅔ로 각각 변하는 것처럼요. 아니면, ㅗㅜ가 합쳐져 ㅗ가 된다거나, 반대로 모음이 늘어나는, ㅔ가 ㅔㅣ가 된다거나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리의 추가나 소실입니다. 더 설명하기 쉬운 소실을 먼저 보죠. 1장 7막에서도 말씀드렸듯이, “ㅎ”은 많은 언어에서 흔히 사라지는 소리입니다. 이외에도 특정 지점에서 소리가 사라진다거나(한국어에서 받침의 ㅅ은 ㄷ으로 바뀌었죠), 아니면 다른 소리와 합쳐진다거나(역시 한국어를 예로 들자면 ㅅ과 ㄱ ㄷ ㅂ가 만나면 ㄲ ㄸ ㅃ가 되는 것으로 바뀌었죠) 하며 소리가 한 언어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사례가 있습니다. 

소리가 추가되는 사례는 설명하기 더 힘들지만, 그중 가장 쉬운 사례는 외국어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소리가 추가되는 현상입니다. 당장 한국어에서도 외래어부터 ㅍ을 f 발음으로 읽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죠. 그게 아니라 한 언어 내에서 완전히 소리가 생성되는 사례는 설명하기 더 어려운데…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죠. 어느 언어에서 과거 시제를 만들 때마다 뒤에 [-ㅣ]를 붙여야 한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이 언어는 모음이 충돌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서, 그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ㅎ]을 추가합니다. 그래서 [사이ㅌ]<사이트>라는 단어의 과거 형태는 [사이티]이지만, [소라]의 과거 형태는 [소라히]이 되는 거죠. 하지만 [ㅎ]은 이럴 때만 쓰이기 때문에 이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ㅎ]이 자신의 언어에 들어 있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어가 변화하며 마지막 모음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이ㅌ]<사이트>라는 단어의 과거 형태는 똑같이 [사이ㅌ]<사이트>겠지만, [소라]의 과거형은 [소라ㅎ]<소라흐>가 되겠네요. 그럼 더 이상 [ㅎ]이 무의식적으로 조건에 따라 추가되는 소리가 아닌, 한 언어에서 확실한 의미를 가진, 구분되는 소리가 되겠죠? 그리고 이렇게 추가된 [ㅎ]이라는 소리는 다른 단어가 새로 만들어질 때도 쓰여 확실하게 이 언어의 일부가 된답니다. 

물론 항상 저런 건 아니랍니다! 소리가 추가되는 다른 예시를 들어볼까요? [마라]와 [봐라]라는 단어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언어에서는 반모음ㅗ/ㅜ는 언제나 ㅂ과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별개의 소리라고 본 적이 한 번도 없죠. 그러니 이들에게는 /마라/와 /바라/인 겁니다. 그런데, 이 언어에서 ㅁ과 ㅂ이 하나의 소리가 됐다고 합시다! 소리가 줄어드는 게 싫다면 단어 맨 앞에서 그렇게 됐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각 단어가 [마라]와 [뫄라]가 되겠죠? 이러면 반모음ㅗ/ㅜ가 단어를 구별하는 역할을 맡게됬네요! 다른 예시를 볼까요? [상ㅋ]와 [산ㅌ]가 있다고 합시다. 이 언어에서는 [ㄴ]이 [ㄱ/ㅋ]과 만나면 [ㅇ]이 됩니다. 그런데 이 언어가 자음군을 인정하지 않게 되어 자음군을 삭제한다고 하면 각각 [상]과 [산]이 되겠네요. 이렇게 새로운 소리가 탄생했네요! 

이렇게 언어는 변화를 누적하며 다른 언어로 탈바꿈한답니다! 단순히 분화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죠. 중국어는 완전히 다른 언어가 되어 버렸지만, 같은 시간 동안 아이슬란드어는 그 모습 거의 그대로 변하지 않았답니다(이건 사실 한 언어를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언어가 변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죠). 만약 고대 문명 같은 게 나온다면, 쓰기 좋은 설정 아닐까요? 

그럼 이것으로 2장을 마치고, 다음 장, 「언어와 사회」에서 만나요!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