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3장 ― 언어와 사회

수많은 문명과 문화를 거쳐

자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체계가 아닙니다. 자연어는 그 언어를 쓰는 문화를 응축해 담아낸,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죠. 그렇기에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사회와 떨어트려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언어와 사회 사이의 관계를 다뤄 보려고 합니다.

사회와 언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뭔가요? 혹시 사회 계층과 언어 습관이 먼저 떠오르지 않으신가요? 사회들은 대부분 무엇이 “아랫것들의 떨어지는 말버릇”이고, 무엇이 “상류층의 격식 있는 언어 습관”인지 구분하죠. 단어마다, 문법마다, 품위가 있는지, 저속한지, 어떤지 정해져 있지 않나요? 그리고 여기서 나아가 영어 같은 언어들은 완전히 계층마다 다른 방언이라 불릴 정도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답니다. 그럼 이런 것들도 방언의 일종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방언이라 하면 생각나는,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방언은 아니죠. 그러니 이런 방언을 사회방언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방언을 지역방언이라고 하면 되죠.

그럼 사회방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확실하게 이런저런 방언이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회가 계급적일수록 각 계급마다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니 흔한 판타지 세계를 그려보죠. 사회 계급의 가장 위에는 성직자들과 귀족들이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귀족들이 단순한 무력이 아닌 품위라는 것을 신경 쓰기 시작한 시대부터는 가장 급이 높다고 여겨지는 사회방언은 고전에 나오는 문어체였습니다. 유럽이면 라틴어, 동아시아면 한문이죠. 기미독립선언문을 보면,

(상략)
噫희라! 舊來구래의 抑鬱억울을 宣暢선창하려 하면, 時下시하의 苦痛고통을 擺脫파탈하려 하면,
(하략)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위에서 한자로 적힌 부분은 원문에서 한자로만 적힌 부분이죠. 물론 말할 때 한자로 말할 수는 없으니, 말할 때는 “희라! 구래의 억울을~”이라고 했겠지만요. 요점은 고전이 득세하고 현학적인 문체가 숭상받던 시절에는 말도 저렇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국어만 그런 게 아니라, 영어, 일본어 등 전 세계 어디나 그랬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투는 성직자와 귀족 등 가장 교육 받은 계층이 주로 썼죠. 또한, 높은 사회 계층일수록 그 숫자가 적으니, 언어가 변화하는 속도도 느립니다. 그래서 그 언어의 사용자 중 가장 보수적인 형태를 띄죠. 마지막으로, 우리가 흔히 귀족들의 말투라고 생각하는 완곡어법, 돌려 말하기 같은 것들도 비언어적 소통보다 언어적 소통에 중점을 두는 사회 상층 계급 언어의 특징입니다.

사회적 하층민들은 이와 반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전에 나올 법한 어려운 단어들이나 외국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직설적이며, 언어 변화의 선두를 달리죠. 그리고 그 사이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위를 올려다보며 성직자와 귀족의 말투를 따라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대부분 그런 말투를 대대로 사용하던 것이 아니니, 말투를 교정하다가 틀리는 경우가 발생하고, 올바른 말투마저 교정해 버렸을 때를 우리는 과도교정이라고 부르죠.

하지만, 지역방언과는 다르게 사회방언은 독립된 언어로 갈라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시작부터 피지배층과 지배층의 언어가 처음부터 완전히 달랐던 경우를 제외한다면, 같은 언어를 쓰던 사회의 상층부와 하층부가 완전히, 서로 소통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갈라지는 사례는 없었죠. 이는, 당연하게도, 사회의 상층부와 하층부는 완전히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 사는 사람이라도, 자기들끼리만 살 수는 없죠. 

이 요점은 다음 개념과 그대로 연결됩니다. 바로 층언어죠. 사회언어학에서 층언어란 접촉을 통해 다른 언어와 영향을 주고받는 언어를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두루뭉술하니, 역사적인 예시를 들어보죠.

먼 과거, 지금은 프랑스라고 불리던 지역에는 켈트족의 한 분파인 갈리아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들이 쓰는 언어는 켈트어파에 속한 갈리아어였죠. 그러나 로마가 이 지역을 정복하고 나서는 이 지역에는 라틴어가 쓰였습니다. 라틴어는 본래 쓰이던 갈리아어를 완전히 대체하게 되었죠. 하지만, 갈리아어는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의 로마인들의 언어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단순하게 단어나 고유명사를 넘겨준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관용어구 같은 것도 남겼죠.

시간이 지나고 로마 제국이 쇠락하며 이 지역은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프랑크족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프랑크어가 소멸하게 되었죠. 오히려 그 지역에서 쓰이던 라틴어를 지배층인 프랑크족이 사용하게 되면서, 프랑크어는 흔적만 남긴 채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 프랑스어는 프랑크어의 후예가 아닌 라틴어의 후예가 된 것이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어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 가치는 더 큰 무력에서 올 수도, 더 큰 문화적/기술적 발전에서 올 수도, 종교적 권위에서 올 수도 있죠. 예컨대 무력으로 다른 민족을 정복한 뒤 피지배층의 언어보다 지배층의 언어가 선호 받고(이유로는 ‘더 존중받으니까’나 ‘권력에 다가가기 쉬우니까’ 등이 있겠네요), 피지배층의 언어가 점차 사라져 가며 지배층의 언어에 약간의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집니다. 이렇게 상위 계층의 언어를 상층언어, 하위 계층의 언어를 기층언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무력 정복은 항상 단기간에 이뤄질 필요는 없습니다. 몇 세대에 걸쳐 천천히 한 지역을 군사적으로 더 우세한 민족이 이주해 오는 것도 이런 부류에 속하죠. 이걸 이주 후 동화라고 할지, 침략 후 동화라고 할지는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가장 유명한 예시는 인도의 역사겠네요. 세계 4대 문명이던 인더스 문명의 몰락 이후 아리아인(고대 인도유럽어 화자)들은 인도로 이주/침략했습니다. 천 년 넘게 이주/침략이 이뤄진 후 인도 북부에는 기존의 언어가 아닌 아리아인들의 언어만이 남게 되었죠.

물론 항상 기층언어만 이런 수난을 겪는 건 아닙니다. 위에서도 봤듯이, 오히려 정복자들의 언어가 깔끔하게 사라지기도 하죠. 가장 좋은 예시는 로마 제국과 중국을 이민족들이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족들의 언어 대신 라틴어와 중국어가 계속해서 쓰이고, 역으로 정복자들조차 이들 언어를 쓰게 된 역사가 있겠네요. 물론 상층언어는 상층언어다 보니 사라지더라도 기층언어가 사라질 때보다는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아예 기층과 상층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혼합되는 경우도 있죠. 바로 영어 같은 사례처럼요. 영어는 문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기층이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긴 하지만, 어휘를 보면 상층의 어휘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력, 문화, 기술, 종교의 우위는 일치할 때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방금 말한 로마 제국과 중국을 정복한 이민족들의 경우죠. 무력에서는 우위였지만, 문화나 기술에서는 아니었던 거죠. 종교의 우위는 아랍어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의 확산과 함께 퍼진 아랍어는 각 지역의 언어를 대체했죠. 물론 이 종교적 우위는 무력의 우위와 함께 하긴 했지만, 아랍권 제국의 영향 아래 오래 있지 않았어도 아랍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있죠. 

마지막으로, 방층언어를 봅시다. 방층언어는 상하관계 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 언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단순히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영향을 주고 받는 사례에서, 특정 영역에서만 쓰이는 언어의 사례도 있죠. 후자의 예시로는 학술 분야에서의 영어가 있겠네요. 애초에 한국어에 있던 개념이 아니니, 외국어가 한국어를 ‘교체’했다고 하기는 맞지 않기에 방층언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해석에 따라 상층언어가 기층언어를 대신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요. 그리고, 우리가 학술 분야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영어 어휘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곧바로 온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상층언어는 이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 개념을 창작물에 녹아내고 싶다면 마법과 관련된 단어는 고대의 어느 문명에서 전해진 단어를 쓴다는 설정을 넣을 수 있겠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이런 설정을 어떻게 집어넣을 수 있을지 봅시다. 사회 계급의 차이로 빚어지는 언어의 차이를 보이고 싶다면 전 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변화들을 선택적으로 적용해서 둘의 차이를 키우면 된답니다. 이 때 상층보다는 하층의 언어변화가 더 많게 둬야겠죠? 그리고 하층의 언어는 더 단순하게, 더 생략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면 더욱 현실성 있답니다. 현실의 예시로는 타밀어가 있습니다. 사회 상층민들은 물, 마시는 물, 마실 수 없는 물을 모두 다른 단어(jalo, tirrto, tanni)로 나누지만, 하층민들은 셋 모두 한 단어(tanni)로 일컫죠. 이외에도 상층민들은 하층민들이 쓰는 단어를 멸칭(음식은 saado, 먹이는 sooru, 후자는 하층민이 음식을 일컫는 단어)으로 쓴답니다. 이건 어휘의 차이니, 문법의 차이도 봅시다. 

영어를 배우신 분이라면, 영어에서 {~이다}를 뜻하는 단어 is를 알 것입니다. 미국흑인구어 영어(AAVE)에서는 is의 생략이 두드러지죠. 이외에도 의문사에서 어순 변경이 일어나지 않는다던가, 동사에 3인칭 단수 접미사 -es가 붙지 않는다던가 하는 다양한 문법적 특징이 돋보입니다. 이런 것들을 모르더라도, 원래 쓰여야 할 것을 생략하고, 원래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고, 원래 더해야 하는 것을 더하지 않는다는, 더 간단해지는 방향으로 간다는 느낌만 얻으셨으면 합니다.  

또한, 한 사람이 여러 계층의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종교적, 정치적, 학문적인 상황이나 뉴스, 시에서는 상층의 언어를 쓰고, 사적인 상황이나 하인들에게 하는 지시, 통속극이나 민중 문학에서는 하층의 언어를 쓰는 현실의 사례도 있죠. 이는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다양한 언어(또는 언어 습관)이 쓰일 때 어디서 어떤 언어가 쓰이는지를 보여줘 세계의 깊이를 더해주는 데 쓸 수도 있겠네요. 

현대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못 느끼겠지만, 입을 여는 순간 그 사람의 사회적 계급이 낱낱이 드러나는 언어(예컨대, 영국 영어)에서는 어휘, 문법뿐만이 아니라 발음도 중요합니다. 그러니 등장 인물이 자신의 사회 계급이 아닌 다른(특히 더 높은) 사람과 대화할 때 이런 면모가 지적당하거나 평가받는 장면이 들어가도 좋을 것 같네요. “당신 같은 평민들은 ‘ㅅ’도 제대로 발음 못하는군요?”라거나, “제대로 잠입하기 위해서 발음부터 교정하자고. 특히 너의… ‘ㅓ’ 발음부터.”라는 대사가 예시가 될 수 있겠군요. 

이렇게 언어는 사회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답니다! 그러니 그 사회가 가진 모습을 언어에 담아 내시기를 추천드려요! 그럼 이걸로 3장을 마치고, 다음 장, 「언어와 문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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