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언어 창작의 기본에 다다라
이전 장들을 보며 음소가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창언창안의 1막 2장에서 했던 활동이 결국은 한 언어의 음소와 음소의 배열 규칙을 익히는 활동이었던 것도 알게 되었죠.
그러면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음소부터 만들어 보는 연습을 해봅시다!
물론,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 완전히 색다른 음소를 골라 언어를 만들어 볼 수 있겠지만, 거기엔 큰 문제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흔하지 않은 음소만 고른다면, 당연히 굉장히 특이한, 즉 평범하지 않은 언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물론 세상은 넓고,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아서, 별난 음소를 가진 언어도 많습니다. 하지만 별난 음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죠. 발음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발음하기 편한 쪽으로 빠르게 음소가 변화하죠. 중국어가 좋은 예시입니다. 그러니 흔치 않은 음소만 골라 언어를 만든다면, 독자가 몰입하기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너무 다르면 멀게 느껴지니까요.
두 번째 문제는 반대로 작가와 창작물 사이의 거리입니다. 너무 특이한 음소를 고르면, 특히 한국어 화자이실 여러분께서 발음하기 힘든, 한국어에 없는 발음을 골랐을 때 자신의 언어를 읽지 못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언어를 위해서 열심히 배워 제대로 발음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한 가지 장벽이 있습니다. 한글로 표기하기 마땅찮다는 거죠. 아무리 독특한 발음을 가지고 오신다고 하더라도, 한글의 자모 40자의 장벽을 넘지 못한답니다. 그러니, 굳이 지나치게 힘들여 찾기 힘든 발음을 고를 필요는 없지요.
그러면 음소를 어떻게 골라야 ‘자연스러워’ 보이고, ‘있을 법한’ 언어로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식은 정반대로 흔한 음소만을 고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가 흔한 음소인지 알아야겠지요?
가장 흔한 모음은, 흔한 순서대로
전설 평순 고모음 i
후설 원순 고모음 u
저모음 a
입니다. 쉽게 말해 삼각형을 그리시면 됩니다. 발음할 수 있는 모든 모음 중 [이], [우], [아]가 삼각형의 꼭짓점에 있는, 가장 구별하기 쉬운 모음이니 이들을 가지는 언어가 많죠. 그러나 가장 흔한 모음 체계는 흔히 ‘아에이오우’라고 부르는, 5모음 체계입니다. 위의 세 모음에, i와 a, u와 a 사이 모음을 하나씩 추가하면 되죠.
후설 원순 중모음 o
전설 평순 중모음 e
그러나 모음 체계는 이 둘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한국어만 해도 더 많은 모음을 가지고 있죠. 그러나 모음 체계를 만들 때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대칭성이죠. 모음의 위치를 종이 위에 찍었을 때 가운데 선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게 모음을 정하는 게 좋습니다.
가장 흔한 모음은, 흔한 순서대로
양순 비음 m
무성 연구개 파열음 k
경구개 접근음 j
무성 양순 파열음 p
양순 연구개 접근음 w
치경 비음 n
무성 치경 파열음 t
치경 설측 접근음 l
무성 치경 마찰음 s
유성 양순 파열음 b
연구개 비음 ŋ
유성 연구개 파열음 g
무성 성문 마찰음 h
입니다. 모음보다는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죠?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조음 위치는 양순, 치경, 연구개가 가장 흔하고, 조음 방법은 비음, 무성 파열음, 유성 파열음이 가장 흔하며, 추가로 s, h, w, j가 발음이 쉽기 때문에 흔합니다. 그러니 3 곱하기 3에 4자음을 더한 13자음 체계가 가장 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자음도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규칙성이죠. 예를 들면 한 조음 위치에 유성 파열음이 있고, 무성 파열음이 다른 조음 위치에서도 존재한다면 그 조음 위치에서도 무성 파열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표를 채웠을 때 빈칸이 적어야 한단 것이죠. 예시로 한국어를 보면, 파열음이 있는 세 위치, 양순, 치경, 연구개에 모두 규칙적으로 세 개의 자음이 있고, 그 자리에 비음도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흔한 음소로만 언어를 만들면 언어가 재미없어집니다. 그러니 약간의 양념을 치는 것이 좋죠. 두 가지 양념이 있습니다. 하나는 새로운 것이 추가되는 거고, 하나는 있어야 할 게 없는 것이죠. 전자는 특이한 음소를 추가하는 것이고, 후자는 대칭성이나 규칙성에 따라 있어야 할 음소가 없는 겁니다. 두 방법 다 언어에 독특함을 넣어주지만, 너무 지나치면 이도 저도 아닌 짬뽕이 되니 주의하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그러면 몇 가지 창작 언어의 음소 체계 예시를 볼까요?
가장 먼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언어라는 명성을 가진 인공어, 토키포나입니다!
모음은 a e i o u으로 다섯 개고,
자음은 m n k t p s w j l로 아홉 개라, 총 14개의 음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굉장히 간단하죠?
거기다가 모음끼리, 자음끼리, 모음끼리 부딪힐 수 없다는 규칙, 종성은 n만 허용한다는 규칙, 그리고 거기다 몇 가지 편의를 위한 규칙들(ti, ji, wo, wu 허용하지 않음, n과 비음 충돌 허용하지 않음)이 있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발음할 수 있답니다!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언어이기도 하고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언어라는 명성을 가진 인공어 이트쿠일은 압축적으로 정보를 담기 위해 복잡한 음소를 가지고 있죠. 물론 이렇게 음소가 많으면 한글로 표기하기 곤란하니 권장하지 않지만, 한 쪽 극단의 예시로 알아만 둡시다.
모음은 전설, 중설, 후설에 저, 중, 고의 3 곱하기 3에서, 후설 저모음이 빠지고, 전설 중모음에 원순/비원순 구분이 있는 9모음 체계입니다.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네요.
자음은,
비음: 순, 치경, 연구개 m n ŋ
(유성, 무성) 파열음: 순, 치, 연구개 b p d̪ t̪ ɡ k
무성 파열음: 성문 ʔ
(유성, 무성) 파찰음: 치경, 후치경 d͡z t͡s d͡ʒ t͡ʃ
(유성, 무성) 마찰음: 순, 치, 치경, 후치경 v f ð θ z s ʒ ʃ
무성 마찰음: 치경 설측, 경구개, 연구개, 성문 ɬ ʃ ç x h
접근음: 양순(연구개), 치 설측, 경구개, 구개수 w l̪ j ʁ̞
탄음: 치경 ɾ
으로, 총 31개입니다. 복잡하네요.
이트쿠일의 음소 배열 규칙은 여기서 다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니, 이 정도까지만 알아두죠.
가장 유명한 인공어인 에스페란토는 영어를 대체할 세계 공용어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가장 성공적인 인공어라고 할 수 있죠. 한 번 봐 볼까요?
에스페란토는 너무 성공적이라, 영어나 한국어처럼 이 음소가 음소가 맞는 건가하는 토론이 일어난답니다. 보통 인공어에서는 음소가 시작부터 정해져 있으니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죠. 위키백과에 따르면, 에스페란토의 모음은
a e i o u의 5모음 체계에, 이중 모음 ui̯ ei̯ oi̯ ai̯ eu̯ au̯ (◌̯은 이 모음이 개별적인 음절을 이루지 않는다는 의미로, [야]가 [이아]를 빠르게 발음한 소리인 것처럼 [ai̯]는 [아이]를 빠르게 발음한 소리입니다) 여섯 개가 있습니다. 이중 모음을 모음에 접근음이 더해진 것으로 해석해도 됩니다. 그러면 각각 uj ej oj aj ew aw가 되겠네요. 자음은,
비음: 순, 치경 m n
(유성, 무성) 파열음: 순, 치경, 연구개 p b t d k ɡ
(유성, 무성) 파찰음: 치경, 후치경 t͜s d͜z t͜ʃ d͜ʒ
(유성, 무성) 마찰음: 순, 치경, 후치경 f v s z ʃ ʒ
무성 마찰음: 연구개, 성문 x h
접근음: 설측 치경, 경구개 l j
전동음: 치경 r
총 23개의 자음이네요! 이 정도면 평범한 정도죠. 에스페란토가 로망스 언어(포르투갈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마니아어 등)의 느낌이 나게 만든 것을 생각하면 유럽권 언어에서 흔히 보이는 음소를 쓴 것도 이해할 수 있네요.
에스페란토의 음소 배열 규칙은 SCCVCC*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C에는 아무 자음이나, C*에는 h를 제외한 자음, S에는 s나 ʃ, V에는 아무 모음(이중 모음)이나 올 수 있죠. 물론 SCCVCC*는 최대치이고, 대부분의 에스페란토 음절은 CV(C*)랍니다. 소괄호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의미죠.
창작물의 인공어 중 가장 유명한 세 언어를 알아봅시다! 나이순으로, 퀘냐부터 알아봅시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요정(엘프)들의 언어죠.
모음은 a e i o u의 5모음 체계에, 각 모음마다 장단 구분이 있어 총 10개의 모음이 있습니다. 다만, e와 o의 경우 장음 eː oː에 비해 단음은 입이 더 벌어진다는 특징이 있어 이들의 짝인 단음은 e o가 아닌 ɛ ɔ입니다.
자음은,
비음: 순, 치경, 연구개 m n ŋ
(유성, 무성) 파열음: 순, 치경, 연구개 p b t d k ɡ
(유성, 무성) 마찰음: 순 f v
무성 마찰음: 치경, 연구개, 성문 s x h
접근음/반모음: 양순, 경구개 w j
설측 접근음: 치경 l
전동음: r
퀘냐의 음소 배열 규칙은, 어말에는 n r l s t nt만 허용, 어중에서 중복될 수 있는 자음은 p t c m n s l r, 그리고 허용된 어두 자음(군)과 어중 자음군의 정해진 집합이 있어, 굉장히 유연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빡빡한 게 아니냐고요? 토키 포나나,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에 비하면 유연한 편이죠. 저 집합이 여기 적기에는 너무 크거든요.
다음은 클링온어입니다. 스타트렉의 클링온 종족이 쓰는 언어죠.
모음은 a e i o u의 5모음 체계지만, 전설 모음들이 이완돼 있어 e i이 아닌 ɛ ɪ랍니다. 이중 모음은 반모음 j나 w이 더해진 aj ej ij oj uj aw ew iw이 있어 총 13모음이네요.
자음은,
비음: 순, 치경, 연구개 m n ŋ
(유성, 무성) 파열음: 순, 치경 pʰ b tʰ ɖ
무성 파열음: 연구개, 성문 qʰ ʔ
(유성, 무성) 파찰음: 후치경 t͡ʃ d͡ʒ
무성 파찰음: 설측 치경, 연구개 t͡ɬ q͡χ
유성 마찰음: 순, 연구개 v ɣ
무성 마찰음: 치경, 연구개 ʂ x
접근음: 순, 치경, 설측 치경, 경구개 w r l j
이 색으로 적은 소리들은 위치상 나야할 소리(d kʰ k͡x s ɹ)가 아닌 다른 소리라는 것에 주의하세요.
클링온어의 음소 배열 규칙은 확고합니다. CV(C/G)로, 초성의 C와 V는 필수로, 각각 아무 자음과 모음이며, 종성은 없어도 되나, 있는 경우 아무 자음C이나, 정해진 자음군G(wʔ jʔ rɣ)이어야 합니다.
일부러 이색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특이한 구조의 자음 체계를 선택한 게 보이시나요?
마지막으로 나비어입니다.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나비족이 쓰는 언어죠.
모음은 전설에 i ɪ ɛ æ, 후설에 u~ʊ o a로 총 일곱 개입니다. 상당히 특이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죠. 거기에 이중 모음 4개(aw εw aj εj), 그리고 모음처럼 기능하는 성절 자음 2개(l̩ r̩)이 있습니다. 성절 자음(◌̩)이라는 것은, 모음의 주된 역할인 음절의 핵, 중심을 맡는 기능을 하는 자음이란 뜻으로, 이론상 모든 자음이 성절 자음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성절 자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흔하진 않죠. 한국어에는 없지만, [음ㅁㅁㅁㅁ]이나, [을ㄹㄹㄹㄹ] 같은 소리를 내보시면 어느 정도 감이 오실 수도 있습니다. 추가적인 정보는 이 문서를 참고해 주세요!
자음은,
비음: 순, 치경, 연구개 m n ŋ
(평, 방출) 파열음: 순 치경 연구개 p pʼ t tʼ k kʼ
평 파열음: 성문 ʔ
파찰음: 치경 t͡s
(유성, 무성) 마찰음: 순, 치경 f v s z
무성 마찰음: 성문 h
접근음: 순, 치경, 설측 치경, 경구개 w ɾ l j
방출음과 평음이 대비를 이루는 게 특이하네요.
음소 배열 규칙을 보면, 모음 충돌이 허용되며, 마찰음과 파찰음은 초성만 가능하고, 반모음이 종성에 오는 일은 이중모음의 일부로 오는 일밖에 없으며, 모음의 일부라 다른 자음이 더 와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초성에서 f ts s와 ʔ을 제외한 자음이 만나 39개의 자음군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 다른 제약은 없으니, 평범한 편이네요.
이렇게 창작 언어 다섯 개의 음운 체계를 알아봤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량의 홍수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시겠지만, 다양한 예시를 들어 음운 체계의 윤곽을 잡는 것을 도와드리기 위해 정리해 놓은 것이니 편하게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직접 다양한 언어의 음운 체계를 찾아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해당 언어의 이름을 검색해 나무위키나 위키백과를 읽으셔도 되고, 영어로 (언어 이름) phonology를 검색하시면 위키백과에 깔끔하게 정리된 표와 문서를(영어지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장인 「언어와 형태」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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