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만들어 봅시다
형태론은 말 그대로, 형태에 관한 학문입니다. 무엇의 형태일까요? 언어학의 한 분야니 당연히 언어의 형태겠죠! 그런데 이미 언어의 형태를 다루지 않았나요? 여태까지 언어의 소리에 대해 알아봤었잖아요! 그러나 언어학에서 말하는 형태는 모양만이 아니라 기능도 같이 일컫는 말입니다.
벽돌을 재료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지만, 벽돌의 기능에 따라 좁은 곳에 들어갈 벽돌, 모서리에 들어갈 벽돌, 풀을 기를 수 있는 것 같이 특별한 기능이 있는 벽돌 등으로 구분할 수도 있죠. 이렇게 다양한 재료로 이루어져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벽돌이 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보는 학문이 형태론입니다.
앞서막 6장에서 저는 형태론이 ‘단어’에 관해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했었습니다. 위의 벽돌은 단어에 대한 비유였죠. 근데, 도대체 단어란 무엇일까요? 흔히 띄어쓰기(글이 아닌 말이라면, 말하다가 잠시 멈추는 때)로 나눠지는 각 부분을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밥 먹었어?”라는 말에는 단어가 두 개 있네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밥은 먹었어?”라는 말에도 단어는 그대로 두 개지만, 무언가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뜻도 약간 달라졌네요.
다른 예시를 봅시다. “먹을 거야”라는 말에는 단어가 몇 개인가요? 두 개인가요? 하지만, “밥 먹었어?”라는 문장과 “먹을 거야”라는 문장을 비교해 봅시다. 둘 다 네 음절인데, “밥 먹었어”의 ‘밥’과 ‘먹었어’ 사이 조용한 시간과 “먹을 거야”의 ‘먹을’과 ‘거야’ 사이 조용한 시간의 길이가 다르지 않나요? 아예 ‘먹을 거야’는 한 단어처럼 빠르게 발음하지 않으시나요? 또, “밥, 먹었어”처럼 둘 사이를 확실히 띄어 놓을 수 있는 “밥 먹었어”와는 다르게 “먹을, 거야”는 확실히 이상하지 않나요? 이게 과연 두 단어이긴 한 걸까요?
마지막으로 “만성골수백혈병”이란 말을 봅시다. 이건 한 단어죠. 하지만, 한글 맞춤법은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쓸 수 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만성 골수 백혈병”으로, 세 단어짜리 말입니다. 둘 다 똑같은 말인데다가, 띄어 쓰든 안 쓰든, 말로 하면 둘 다 말하다가 중간중간 멈춰 말하니 세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단어란 뭐죠?
그래서 형태론에서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합니다. 바로 형태소죠. 음소가 음운론의 가장 기초가 되는, 뜻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소리의 단위라면, 형태소는 형태론의 가장 기초가 되는, 뜻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단위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물”이라는 말은 형태소이기도 합니다. “통”이라는 말도 형태소죠. “물통”이라는 말은 두 형태소가 만나 새로운 뜻을 가지게 된 단어입니다.
더 끌고 나가 봅시다. “먹다”라는 말은 무언가를 입을 통해 배 속에 넣는 행위를 뜻하는 “먹-“이라는 형태소와 용언의 활용형 중에서 기본형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라는 의미를 가진 “-다”가 만나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먹었다”는 과거의 뜻을 더하는 “-었-“이 추가된 말이고, “먹을 거다”는 “먹-” “-을” “것” “이-” “-다”라는, 다섯 형태소가 만난 “먹을 것이다”가 줄어든 말이죠. 그런데 “먹다” “먹었다” “먹을 거다”는 모두 실질적인 뜻이 같습니다. 셋 다 먹는다는 실질적인 뜻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먹-“이라는 형태소는 실질 형태소, 다른 부분은 문법적인 뜻만 가진 형식 형태소(문법 형태소)라고 한답니다. 물과 통의 경우, 둘 다 실질 형태소가 되겠네요.
그래서 형태론적으로 보자면, 단어는 형태소거나, 형태소가 만나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형태소가 만날 때 다양한 방법으로 만날 수 있죠.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실질 형태소가 만나 만들어지는 합성어입니다.
합성어에는 두 실질 형태소가 비슷하게 중요한 대등 합성어, 한 형태소가 더 중요한 수식 합성어(종속 합성어), 두 형태소의 뜻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뜻이 만들어지는 융합 합성어의 세 종류가 있습니다. 각각의 예시로는 “손발”(손과 발을 일컫는 말), “손가락”(손끝의 가락, 즉 손끝의 다섯 개로 갈라진 부분), 돌아가시다(돌아가다의 높임말이 아닌, 죽다의 높임말로 쓰일 때)가 있겠네요.
파생어는 실질 형태소에 접사(형식 형태소)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불확실성이 있겠네요. “확실”이라는 실질 형태소에 “불-“이라는 접두사와 “-성”이라는 접미사가 만나 만들어졌습니다. 접사와 실질 형태소 사이의 차이가 궁금하시다면, 언어를 만드실 때 “이 단어는 혼자서는 쓸 수 없고 여러 단어에 붙어 다양한 뜻을 불어 넣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시고 만든 단어는 접사고, 그렇지 않으면 접사가 아니라는 간단한 규칙을 드리겠습니다. 접사와 실질 형태소를 분리하기 까다로울 때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은 어색할, 문법적 요소입니다. “먹다”란 단어에 여러 문법 형태소를 추가해 “먹히고 있었을 것이다”라는 단어를 만들 수 있죠. “-히-“는 수동태(주어가 행위의 대상이라는 의미), “-고 있-“은 진행상(행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 “-었-“은 과거시제(시간적으로 과거에 일어났다는 의미), “-ㄹ 것이-“는 가정법(문장의 정보가 화자의 추측이라는 의미)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언어에서는 다른 방법을 쓰죠. 라틴어 edō는 {(내가) 먹다}라는 뜻으로, 기본형입니다. ederēre는 {(너가) 먹히고 있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ō가 erēre로 변하는 이 작은 변화가 이 모든 뜻을 담고 있는 것이죠. edor는 {(내가) 먹히고 있다}라는 뜻이고요. 작은 변화에 모든 문법적 뜻이 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어를 봅시다. 중국어에서 {먹다}는 吃입니다. 그리고 {먹히고 있었을 것이다}는 可能正在一定被吃掉过가 될 것 같습니다(죄송합니다, 제가 중국어를 못해서 더 나은 번역이 있다면 댓글로 꼭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보면 어려워 보이지만, 吃을 제외하고 앞뒤에 붙은 온갖 한자들은 부사로, 쉽게 떼어낼 수 있고, 각각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죠. 영어도 비슷합니다. Could have been being eaten이라는 긴 문장에서 {먹다}를 의미하는 “eat”의 변형인 “eaten”을 제외하면 다 부사로,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동사뿐만 아니라 명사도 이렇게 바뀐답니다. 한국어 “사과들을”을 봅시다. 사과라는 명사에 복수를 의미하는 “-들”과 목적격을 의미하는 “-을/를”이 붙어 한 단어가 됐습니다. 라틴어로 mālōs는 똑같이 {사과들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과가}라는 뜻이자 기본형인 mālus의 변형이죠. 중국어로 사과는 苹果입니다. {사과들}은 苹果们이고, 목적격이라는 문장 성분은 문장에서의 위치로 정해지죠.
이렇게 보면 언어를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중국어나 영어같이 명사/동사와 따라오는 문법적 성분이 완전히 분리된 언어인 고립어/분석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언어를 형태론적 특징에서 볼 때에, 어형 변화나 접사 따위가 없고, 그 실현 위치에 의하여 단어가 문장 속에서 가지는 여러 가지 관계가 결정되는 언어. 중국어, 타이어, 베트남어 따위가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한국어나 일본어같이 명사/동사와 따라오는 문법적 성분이 풀로 붙인 듯이 서로 달라붙은 언어인 교착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언어의 형태적 유형의 하나.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 또는 어간에 문법적인 기능을 가진 요소가 차례로 결합함으로써 문장 속에서의 문법적인 역할이나 관계의 차이를 나타내는 언어로, 한국어ㆍ터키어ㆍ일본어ㆍ핀란드어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라틴어나 러시아어같이 명사/동사와 따라오는 문법적 성분이 서로 섞인 듯이 하나가 된 언어인 굴절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형태론적 특징으로 본 언어의 한 유형. 어형과 어미의 변화로써 단어가 문장 속에서 가지는 여러 가지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를 이른다. 인도ㆍ유럽 어족에 속한 대부분의 언어가 이에 속한다」고 합니다.
언어를 세 종류로 나눈 이 분류는 문법적 성분이 얼마나 실질 형태소에 달라붙어 있는지를 두고 나눈 것입니다. 고립어는 두 성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교착어는 둘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기 때문에 맘대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죠. 하지만 굴절어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둘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먹히고 있었을 것이다”와 ederēre를 비교해 봅시다. 전자는 각 부분이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 (위에서 한 것처럼) 확실히 분리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 edō의 ō가 erēre로 변하고, 뜻이 {(내가) 먹다}에서 {(너가) 먹히고 있을 것이다}로 바뀐 것 외에는 더 쪼개거나 분석할 수가 없습니다. 따로따로 er가 2인칭을 뜻하는 부분이라거나 ē가 추측을 의미한다거나 re가 진행상을 의미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니까요.
여기서 더 나아가 문장을 통째로 한 단어로 적는 언어도 있습니다. 나와틀어 예시를 볼까요? Nimitztētlamaquiltīz라는 단어는 ni- {1인칭 단수} mitz- {2인칭 단수} tē- {사물 부정칭} tla- {사람 부정칭} maqui- {주다} ltī- {하게 하다/사역화} -z {미래시제라는 각종 문법적 성분을 붙여 “내가 누군가가 너에게 무언가를 주게 할게”라는 뜻을 가진 문장입니다. 단어가 한 문장이라니, 놀랍지 않나요?
결국 이렇게 언어는 얼마나 문법적 요소와 실질 형태소를 결합하느냐를 두고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류 체계가 딱 잘라 떨어지는 것은 아니죠. 영어는 원래 굴절어였던 만큼 여러 굴절어적인 특징이 남아있고, 중국어는 고립어지만 몇몇 부사가 접사처럼 행동해 교착어의 특징이 조금 있습니다. 한국어는 교착어지만, 몇몇 어미들이 서로 달라붙어 하나의 어미가 되는, 굴절어적인 특징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언어는 여러 분류에 걸쳐 있고, 그 중 한 분류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뿐이죠. 어? 근데 방금 전의 예시를 봅시다. 영어는 굴절어가 고립어로, 중국어는 고립어가 교착어로, 한국어는 교착어가 굴절어로 가는 것 같지 않나요? 마치 굴절어, 고립어, 교착어가 서로 순환하는 것처럼요. 형태론적 순환morphological cycle이라는 이름의 이 이론은 언어가 굴절어, 고립어, 교착어 순서로 순환하며 변화한다는 가설입니다.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흥미롭지 않나요?
어? 그런데 접사나 어미, 아니면 굴절어에서 변화하는 부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죠? 한국어 조사 “밖에”를 봅시다. “너밖에 없다”를 봅시다. “밖에”의 뜻은 「’그것 말고’, ‘그것 이외에’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입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이 단어는 명사 ‘밖’과 조사 ‘에’가 만나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죠. 실제로, “침대 밖에 있다”라는 문장에서 “밖에”는 명사 “밖”과 “에”가 만나 만들어졌죠. 그러나 “밖”이라는 명사의 뜻이 살아 있으니, 국립국어원은 조사가 아니라고 보고 “침대”과 띄어 쓰라고 합니다. 하지만, “너밖에 없다”에서는 “밖”의 뜻인 {바깥}이 아니라, 다른 뜻으로 쓰였으므로 기존의 의미를 잃고, 문법적 기능을 하는 ‘조사’가 되었다고 보고 “너”와 붙여 쓰게 한 것입니다. “보다”를 봅시다. “나보다 낫다”에서 드러나듯, “보다”는 비교를 하기 위한 조사이죠. “보다”의 유래는 “보다가”로, ‘다가’는 ‘다’로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갑자를 보다가 을축을 보니 ○○하다”라는 문장이 “을축이 갑자보다 ○○하다”의 형태로 바뀐 것에서 “보다”라는 조사가 생겼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기존의 뜻인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알다」가 아닌 다른 뜻이 되었으니(아니, 뜻을 잃었으니), 문법적 요소인 조사가 됐다고 볼 수 있죠. 이런 변화를 의미의 탈색semantic bleaching이라고 합니다. 영어의 very라는 부사는 {매우, 바로 그}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유래는 {진실}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vērus에서 왔습니다. 이렇게 실질 형태소의 본래 의미가 탈색되고 문법적으로만 쓰이는 현상을 문법화라고 합니다.
한국어의 예시를 더 들자면 “해 버리다” 등에서 「앞말이 나타내는 행동이 이미 끝났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는 “버리다”, “따르다”, “붙다”, “좇다”의 한 형태가 바뀐 “따라”, “부터”(붙어), “조차”(좇아), {~의 끝}이란 뜻의 ᄭᆞ자ᇰ(ㅅ은 현재의 “-의”, ᄀᆞ자ᇰ은 현재의 “가장”)이 “까지”로 바뀐 예시가 있습니다.
의미의 탈색은 음소의 축약과 함께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미가 탈색되고 쓰이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말하기 편하게 발음이 바뀌고 음소가 탈락하는 일은 자연스럽죠. 그러니 직접 언어를 만드시면서 이런 점을 감안하시면 되겠습니다! 거기다, 계속해서 의미와 소리가 바뀔 수 있죠. 좋은 예시로는 “습니다”가 있습니다. “습니다”의 원형태는 “ᄉᆞᆸᄂᆞ이다”로, 목적어를 높이는 어미 “ᄉᆞᆸ”에 현재 시제 어미 “ᄂᆞ”에 청자를 높이는 어미 “ᅌᅵ”, 마지막으로 어말 어미 “-다”가 붙어 만들어진 하나의 커다란 어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각각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로 합쳐져 “습니다”가 되어 버렸죠. 이렇듯 시간이 지나며 문법적 요소는 가장 크게, 가장 빠르게 변한답니다.
의미의 탈색은 이미 문법화가 진행된 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데요, 이해하기 쉽게 가상의 언어인 갑자어를 만들어 봅시다. 이 언어에서 {1인칭 대명사}를 뜻하는 단어는 [si]입니다. {달리다}는 [kosum]입니다. 그러니 {내가 먹다}는 [si.kosum]입니다. {먹다}는 [tog]고, {밥}은 [nil]이니, {내가 밥을 먹다}는 [si.nil.tog]겠네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si]가 문법화가 되며 [s]로 줄어들고, 뒤에 따라오는 동사에 달라붙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니 [si.kosum]이 [skosum]으로 변하는 것이죠. [kosum]은 {달리다}, [skosum]이라는 한 단어가 {(내가) 달리다}라는 뜻인 것이죠. 그런데, [si.nil.tog]은 어떻게 되는 것이죠? [si]와 바로 [tog]가 만나지 않는데요? 걱정 마세요, 사람은 규칙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떠한 규칙이 있으면, 그걸 다른 곳에도 적용하고 싶어 한답니다. 그러니 [nil.stog]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1인칭 대명사}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이 언어에서는 {몸}을 뜻하는 [karum]를 {1인칭 대명사}로도 쓰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니 [skosum]이라고 할 수도, 강조의 의미로 [karum.skosum]이라고도 할 수 있죠. 시간이 더 지나 여러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주어가 1인칭임}을 나타내는 [s]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고, 다른 의미를 얻을 수도 있죠. 여기서는 색다른 변화를 줘보겠습니다. [s]가 반대로 주어에 붙어 강조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요! 처음에는 1인칭 대명사에만 쓰이는 용법이었겠지만, 점점 더 많은 단어에 쓰이며 아예 {강조 접사}로 의미가 바뀌었다고요. [karums.kosum]은 {나는 먹다}고, [karum.nils.tog]는 {내가 밥은 먹다}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의미가 더 사라진 것이죠. 또, {진실}를 뜻하는 [per]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단어가 시간이 지나 {강조하는 부사}가 되었다고 합시다. [karum.nils.per.tog]라는 식으로 쓰이는 것이죠. 거기에 [s]가 달라붙어 [karum.nil.sper.tog]가 되고, [per]가 [sper]가 되었다고 합시다. 이러면 소리는 남아도 뜻은 완전히 사라지게 됐네요.
또다른 예시를 들어보죠. 이건 한국어가 갈 수 있는 길 중 하나입니다. 과거 시제를 뜻하는 어미 [었/았]이 있고,
「현재와 비교하여 다르거나 단절되어 있는 과거의 사건을 나타내는 어미」인 [었었/았었]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며 [었/았] 하나로는 충분히 과거를 나타낸다고 못 느낀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었/았]이 너무 범용적으로 쓰인다거나 했을 때요. 그래서 [었었/았었]이 새로운 과거 시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형태론은 언어를 재밌게 바꿔줄 여러 정보를 알려준답니다. 다음 장에서는 형태론의 한 분야인 단어는 ‘어떻게 만들까’를 주로 다룰 예정입니다. 그러니 이번 장은 이걸로 마치고, 다음 장, 「언어와 단어」에서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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