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12장 ― 언어와 동사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몇 번이고 강조했지만, 문장의 중심은 서술어입니다. 그리고 서술어의 자리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동사죠. 동사는 무엇이고, 어떤 정보를 담고 있을까요? 

동사는, 한 마디로 딱 잘라 설명하기 복잡하지만, 동작/상태/발생 등을 전달하는 품사입니다. 물건이나 추상적인 것들을 의미하는 명사와 구분되죠. 

동사가 중요한 이유는 단지 행동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어떤 행동을 했다는 걸 전달하기 위해서 단순히 그 행동만을 말하지 않아서 동사가 중요한 거랍니다. 예시를 보죠.

走(zǒu)

중국어로 이 단어는 {걷다}를 뜻합니다. 그러나 한국어로 “걷다”는 완벽하게 走와 동일한 의미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走 = 걷다, 걸었다, 걸었었다, 걷습니다, 걸었어, 걷는다, 걸었어요, 걸었소, 걸었다오

走는 이 모든 뜻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죠. 중국어가 아닌 많은 언어에서는 동사에 추가로 여러 문법 정보들을 욱여넣는답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보죠! 

시제

시제는 흔히 들여보셨을 “과거형” “미래형” 같은 말입니다. 가장 간단한 경우는 중국어처럼 시제가 없는 경우죠. 아니, 그럼 중국어로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표현할 수 없나요? {걸었다}는 어떻게 말하죠? 了를 더하면 됩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걷다 끝내다}/{걷다 이미} 같은 느낌이네요. 다른 언어는 어떨까요? 

간단한 시제를 가진 언어는 과거/비과거, 미래/비미래 같은 방식으로 흔히 생각하는 세 시제(과거, 현재, 미래) 중 하나만 따로 구별하고, 나머지는 똑같은 형태를 가지는 구조를 가집니다. 영어가 대표적인 예시죠. 과거 형태(-ed)만 따로 있고, 미래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will, shall, be going to라는 표현을 따로 더하죠. 여기서 하나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원래 동사고, 어디부터가 이 동사에 추가로 달라붙는 다른 부분인가? 간단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창언창안에서는 단순하게 “사람들이 하나로 생각하면 하나”라는 규칙을 따르겠습니다. 즉, 영어의 경우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ed라는 과거 형태는 동사와 한 덩어리로 인식하나, will이라는 것은 동사에 더해지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것이라는 거죠. 

시제는 단순하게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만 있지 않습니다. 언어에 따라 가까운 과거/미래와, 먼 과거/미래를 나누는 경우도 있죠. 한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현재/미래를 나누는 상대 시제도 있습니다. 그러면 시제 표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언어의 유래를 모르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시제 표현은 거의 대부분 조동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조동사는 동사지만, 뜻(실질 형태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문법적 기능만을 책임지게 된 동사를 말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거기에 동사를 딸림으로 둔 머리기도 하지요!). 위에서도 든 예시를 봅시다. 영어의 미래 표현인 will, shall, be going to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will: (~을 하기로) 정하다, (~을) 바라다
shall: (~을 ) 하여야 한다, (~에 빚 등을) 지다 
be going to: (~을 하러) 가다 *현재 이 표현은 상투적으로 쓰이는 정도를 넘어서 gonna, gon’ 등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어, 언젠가는 will이나 shall처럼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본래 이렇게 다른 용도로 쓰이던(= 본래의 의미를 가지던) 동사가 점차 문법화 되어 본래 의미를 잃어버리고 문법적인 뜻으로 쓰이는 것은 흔히 관찰됩니다. 한국어의 과거시제(로 해석될 수도 있는) “-었-“을 볼까요? 

“-었-“의 유래는 “-어 있-(다)”로, 현대 한국어에도 “-어 있다”는 그대로 남아있죠(뜻도 그대로로). 죽어 있다 {죽은 상태에 있다} → {죽었다}의 의미 변화를 겪고, 점차 축약되며 결국 “-어 있-“에서 “-었-“이 된 것입니다. 

각 시제의 흔한 어원을 나열해 보자면, 

  • 과거: 가지다, -이다(계사) 
  • 현재: 아무 변화도 없음(많은 언어에서 문장은 기본적으로 현재시제) 
  • 미래: 가다, 원하다/바라다, 필요하다, 나중에, ~할 수도 있다(추측), ~게 만들다/하다(사동태) 

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에 관련된 문법 요소가 시제가 다가 아니랍니다. 

상은 시제보다는 조금 더 생소한 단어죠. 하지만 익숙한 개념이랍니다! 현재진행형이니, 과거완료형이니, 할 때 진행, 완료가 각각 진행상, 완료상이라는 “상”이죠. 그래서, 상이 뭐죠? 시제가 시간 위의 한 지점이라면, 상은 시간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나타낸답니다. 덕분에 시제보다 훨씬 복잡하기도 하죠. 

가장 일반적인 상은 완망상(완료상이라고도 불림)과 비완망상(역시 미완료상 등으로도 불림)의 구분입니다. 쉽게 말해, 시작과 끝이 있으면 완망상, 시작과 끝이 안 보이면 비완망상입니다. 예시를 보죠. 

먹던 밥 (다 먹었는지 아닌지 모름)
먹었던 밥(확실히 다 먹음)

다 먹었다는 것은 끝이 났다는 것이니 완망상이고, 다 먹었는지 모르면 끝이 안 보이니 비완망상입니다. 아래의 예시는 상과 시제의 차이를 잘 드러냅니다. 

어제 산책할 때(산책이 이뤄지고 있는 중 = 시작과 끝이 안 보임)
내일 비가 그쳤을 때(비가 이미 그침 = 끝이 보임)

완망상과 비완망상 말고 다른 구분을 쓰는 언어도 있습니다. 시작을 의미하는 기동상, 끝을 의미하는 종결상, 지속해서 일어난다는 뜻의 연속상, 일어나고 있다는 뜻의 진행상,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습관상 등이 있죠. 

단어 자체가 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미 때문에(물론 언어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몇몇 단어들은 한정적인 쓰임을 가지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발견하다”가 있습니다. “그는 8시간 동안 발견하고 있었다”라는 문장은 너무나 이상하죠. 이렇게 단어 자체가 가지는 상을 어휘상이라고 합니다. 재밌고 중요한 개념이지만, 언어 창작에서는 별로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파고들며 만드는 언어가 아닌 이상, 보통 “발견하다” 같은 단어를 진행상으로 쓰려고 하는 걸 예상하면서 문법을 만들지는 않으니까요. 어차피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상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과 시제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지만, 한 언어를 분석할 때 둘을 하나로 합치기도 합니다. 다른 언어를 배울 때는 보통 시제와 상을 합쳐(시상) 하나의 “시제”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시제와 상의 구분을 헷갈릴 수도 있지만, 창언창안에서는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탐구하는 게 아닌, 언어를 만드는데 집중하기 때문에 둘을 구분하기 힘들면, 굳이 하지 않으려고 해도 됩니다. 아니, 오히려 하는 것이 이상할 때도 있습니다. 많은 언어에서 시상의 구분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무슨 뜻이냐면, 과거시제와 완망상을 하나로 묶어 과거완료 “시제”라고 부르거나, 현재시제와 비완망상을 하나로 묶어 현재진행 “시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완망상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과거시제에만 적용할 때 이런 해석이 자주 등장하죠. 

각 상의 유래를 모두 알아보는 것은 힘드니, 완망상과 비완망상만 봅시다. 

  • 완망상: 끝나다, 가지다, 오다 
  • 비완망상: -이다(계사), 가다, 앉다, 하다, *가끔 변화 없음

상은 시간적 방향성이죠. 동사 자체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문법 요소는 뭘까요? 

태, 혹은 동태는 단어 자체로는 생소하지만 능동태, 수동태(피동태)라는 표현은 들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능동태와 수동태의 차이를 볼까요? 

뱀이 사과를 먹었다 (능동)
사과가 먹혔다 (수동)

“먹다”는 타동사로, 다른 타동사처럼 행위를 하는 주체와 행위를 당하는 객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먹히다”는 수동태이기 때문에 행위를 당하는 ‘주’체만 있으면 되죠. 즉, 수동태는 행위를 일으킨 단어를 감추고, 대신 행위를 당한 단어를 주어 자리에 놓고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뱀한테” 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주어를 넣을 수는 있습니다만, 더 이상 필수적이진 않죠. 즉, 수동태는 서술어의 자릿수를 하나 낮추고, 행위를 한 주체를 가리는 데에 쓰입니다. 한국어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일본어 등에서는 자동사나 이중타동사도 수동태로 바꿔 자릿수를 하나씩 낮추죠(내가 자다 → 잠들어 버리다/친구가 나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 내가 도움을 부탁받았다). 

유명한 태에는 능동태와 수동태 말고도 사동태가 있습니다. 역시 예시를 봅시다. 

뱀이 사과를 먹었다 (능동)
새가 뱀에게 사과를 먹였다 (사동)

타동사 “먹다”의 경우, 새로운 주어가 추가되고, 행위를 하는 기존의 주어는 (간접) 목적어의 위치로 떨어졌습니다. 새로운 주어는 보통 {~을 시키다}로 해석되죠. 즉, 새가 뱀에게 “사과를 먹는 행위”를 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도 기존의 주어를 감추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완전히 사라지게는 못 하기 때문에 수동태와는 다릅니다. 사동태의 주된 목적은 새로운 주어를 문장에 들여오는 역할입니다. 아래의 셋을 비교해 봅시다. 

사과가 먹혔다
뱀이 사과를 먹었다
새가 뱀에게 사과를 먹였다

점차 정보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주어가 목적어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죠. 태라는 것은 이렇게 서술어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거기에 더해 서술어의 자릿수도 바꾸는 기능을 한답니다. 그럼 이런 태는 어디서 유래할까요? 

  • 능동태: *기본 형태이기 때문에 변화 없음
  • 수동태: 가지다, 쥐다, 오다, 되다, 받다, 당하다, 향하다, 맞닿다, 보다, -이다 
  • 사동태: 일으키다, 시키다, 주다, 만들다, ~게 하다(부사형태 + 하다)

추가로, 태에 따라 다른 단어를 가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한자의 죽을 死와 죽일 殺, 영어의 die {죽다}와 kill {죽이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구별하는 “주다”와 “받다”가 있겠네요. 

방향성과 관련된 문법 요소는 이걸로 마치고 태도와 관련 있는 다음 문법 요소를 봅시다! 

서법

서법은 영어로 무드mood라는 단어로, 문장의 분위기를 의미합니다. 문장의 분위기가 정확하게 뭐냐고요? 예시를 보는 게 더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개 | 기다릴 개

“기다리는 개”는 확실히 기다리고 있지만, “기다릴 개”는 기다리는지 아닌지의 확실하지 않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각각 사실을 전한다는 서법과 추측(생각, 상상)을 전한다는 서법이죠. 다른 언어에서는 서법이 더 자세히 나뉘기도 하는데요, 이런 분류에서 서실법은 직설법으로 불리고, 서상법이 여러 종류로 나눠진답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접속법 {-면}, 명령법 {-라}, 조건법 {-면 ~하다}, 소원법 {-면 좋겠다}, 잠재법 {-ㄹ것 같다}, 추정법 {-수도}, 지령법 {-라}, 의심법 {-ㄹ 수도 있다}, 촉구법 {-라}, 인용법 {-대}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지만, 흔하게 보이는 서법은 서실법, 접속법, 명령법 정도가 되겠습니다. 서법은 보통 부사에서 유래합니다만, 접속법의 경우 이름에서 보이듯이 시작은 두 문장을 하나로 엮는데서 시작했지만, 한국어의 “-면”처럼, 점차 가정이나, 소망, 의심 같은 것을 의미하게 의미 확장이 일어난 사례입니다. 

위에서 저는 흔히 “○○○은 □□어에 없습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그 언어에서 그런 개념을 표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똑같은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단지, 그런 것에 확실하게 대응하고, 필수적이며, 하나로 정해진 문법적 요소가 없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사실은 서법에서 잘 드러나는데요, 한국어에는 흔히 서법이 없다고(-ㄴ/-ㄹ의 한정적 사례 외엔)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기 있는 많은 서법에 한국어 예시를 못 드는 것은 아니죠. 

근데, 필수적이란 게 무슨 의미죠? 이건 라틴어 같은 굴절어에서 잘 드러납니다. 라틴어의 한 동사를 딱 집으면, 어마어마하게 큰 동사활용표가 펼쳐진답니다. 예시로, “사랑하다”라는 뜻의 amāvī를 봅시다. 사실, 이건 “사랑하다”가 아니라, {(현재시제, 완료상, 능동태, 직설법, 1인칭 단수) 사랑하다}입니다. 단어 하나가 무조건 과거/현재/미래 중 하나, 완료/미완 중 하나, 능동/피동 중 하나, 직설/접속/명령 중 하나를 택해야 하죠. 이럴 때 필수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수의적이라는 것은 필수적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walked” {걷다}는 과거시제이면서 3인칭 단수 주어를 가질 수 없을 뿐, 나머지 기능은 필수적으로 들어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수의적으로 여러 조동사나 부사를 더해 정확한 시제를 비롯해 상, 태, 서법을 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시제 형태에 would’ve를 더해 완료상, 능동태, 접속법을 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굴절어와 고립어와 다르게 교착어의 시제/상/태/서법은 수의적인지, 필수적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굴절어는 단어를 만들 때부터 표를 짜며 빈칸을 하나 하나 다 채워야 하고, 고립어는 애초에 (거의) 모든 시상태법이 다 수의적인 것이 특징이지만, 교착어는 기본 형태에 접사(어미)를 하나씩 더하는 형태다 보니 필수적인지 수의적인지 결정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창언창안은 기존의 언어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만약 교착어를 만드시는 거라면, ○○○에 해당하는 어미를 만들기만 하면 해당하는 문법 요소가 그 언어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답니다! 

그럼 이걸로 이번 장을 마치고, 다음 장인 「언어와 명사」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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