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14장 ― 언어와 직시

관점의 차이

직시는 문맥이나 상황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본래는 의미론/화용론에서 다루는 것이 맞겠지만, 이번 장에서는 대명사와 함께 다루려고 합니다. 대명사의 의미는 문맥이나 상황을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이죠({그것}가 뜻일 수 없고, {내가 보고 있는 이 사과}가 진정한 의미라는 측면에서요).

대명사는 명사를 대신한다는 뜻의 이름입니다. 대명사가 대신 하는 것이 여럿 있는데, 하나씩 봅시다. 

인칭

인칭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1인칭, 2인칭, 3인칭을 말합니다. 많은 언어에서 대명사를 인칭, 성, 수, 격에 따라 다 준비해 놓죠. 영어를 봅시다. 영어는 다른 명사에서는 굴절을 모두 잃었지만, 대명사 만큼에서는 굴절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1인칭 단수 주격: I
2인칭 복수 속격: your
3인칭 여성 단수 대격: her

인칭은 너무나 당연해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몇 가지 재밌는 점들이 숨어있어서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1인칭은 화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2인칭은 청자를 일컫는 말이죠. 3인칭은 화자도, 청자도 아닌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1인칭 복수는 화자를 포함한 집단을, 2인칭은 청자를 포함한 집단을, 3인칭은 화자도, 청자도 아닌 집단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1인칭 복수가 화자를 포함한 집단이면, 그 집단에 청자도 들어올 수 있지 않나요? 예를 들어, “우리는 사람이다”라고 하면, 1인칭 복수 “우리”에는 청자도 포함되죠. 한국어에서는 이게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높임법에서 화자는 낮추고 청자는 높여야 할 때, 보통은 1인칭 복수 겸양 표현 “저희”를 쓰지만, 청자도 포함할 때는 “우리”를 쓰는 경우에 둘을 구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정치인의 말에서 흔히 보이는 “우리 국민 여러분”이라는 상용구죠. 

이렇게 청자를 포함하냐 아니냐를 두고 포함성이 있냐 없느냐로 나눈답니다. 일부 언어에서는 포함성이 대명사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랍니다. 즉, 1인칭 포함 복수 대명사와 1인칭 제외 복수 대명사가 서로 다른 형태를 가집니다. 말레이시아어를 보면, 1인칭 포함 복수 대명사는 kita, 1인칭 제외 복수 대명사는 kami로, 서로 다른 모양입니다. 

2인칭에서도 포함성을 따질 수는 있지만, 현실의 언어에서 존재하는지를 두고는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답니다. 만약 있다면, {너와, 너와, 너 등등}과 {너와, 여기 없지만 너가 포함된 집단}의 차이가 되겠죠. 

몇몇 언어에서는 4인칭이 있다고 소개되기 하죠. 하지만 4인칭은 3인칭의 다른 형태일 뿐입니다. 몇몇 언어에서는 3인칭을 둘로 나눠, “가까운” 3인칭과 “먼” 3인칭을 나눕니다. 각각 친근형과 소원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시 문장을 봅시다. 

그는 그의 엄마를 만났다

여기서 첫 번째 “그”와 두 번째 “그”는 같은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일까요? 많은 언어가 이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두지만, 몇몇 언어에서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한답니다. 

그는 가의 엄마를 만났다 (다른 대명사)
그는 그위 엄마를 만났다 (명사에 다른 접사)
그는 그의 엄마를 만났았다 (동사에 다른 접사)

물론 위의 세 경우 모두 첫 번째 “그”와 두 번째 “그”가 다를 때의 경우입니다. 같은 사람이라면, 저렇게 다른 표현을 쓰지 않는답니다. 

마지막으로, 대명사를 싫어하는 언어들이 있습니다. ‘왜 대명사를 싫어하지? 길게 말할 걸 짧게 쓰게 해주는데?’라고 생각하신다면, 바로 그런 언어를 쓰고 계시고 있답니다! 

한국어를 비롯한 몇몇 언어(특히 존비어 문화가 발달한 언어)는 대명사 자체의 높고 낮음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대명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서로를 부르려고 한답니다. 

한국어의 2인칭으로는 “너”와 “당신”이 있지만, 둘 다 남을 깎아내리는 단어로 판단하기 때문에, 거리가 먼 경우엔 “선생님” 등의 직급에서 유래한 단어로, 거리가 가까운 경우엔 “언니” 같은 가족 호칭에서 유래한 단어로 부릅니다. 다음의 예시를 봅시다. 

언니는 먼저 가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여성 화자가 친밀한 여성에게 “언니”를 2인칭 여성 단수 대명사로 쓰는 사례)

일본어의 경우에는 서로의 성에 존칭 접사(さん, 様)를 붙여 부르는 것으로 2인칭을 대신한답니다. 이렇듯 대명사를 회피하는 언어는 다른 언어의 눈으로 봤을 때는 꽤나 신기한 광경이죠. 

3인칭의 경우 아예 존재하지 않는 언어도 꽤 있답니다. 마치 한국어처럼요! 현대 한국어에서 3인칭으로 쓰이는 “그”는 관형사 “그”와 완전히 형태가 같고, 아예 관형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라틴어도 비슷하게 3인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관형사로 3인칭을 대신 나타냅니다. 그래서 관형사 “그” 뒤에 명사를 붙여(“그 사람”, “그 애/걔”) 3인칭 대용으로 쓰죠. 

굴절어의 경우에는 동사에 인칭이 아예 붙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틴어 예시를 보죠. 

edō / edis / edit / edimus / editis / edunt

각각 {(내가 / 너가 / 그가 / 우리가 / 너희가 / 그들이) 먹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칭에 따라 동사의 형태가 바뀌니, 아예 주어를 적을 필요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거리

한국어의 “이/그/저”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화자에게 가깝다/멀다”를 기준으로 거리를 둘로 나눕니다. 이를 근칭과 원칭이라고 합니다. 영어의 this/that의 구분이죠. 한국어 같은 경우 “화자에게 가깝다/화자에게 멀지만 청자에게 가깝다/화자와 청자 모두에게 멀리 있다”를 기준으로 해 거리를 셋으로 나눕니다. 새로 추가된 구분을 청자 근칭이라고 합니다. “이/그/저”가 바로 그것이죠. 다른 언어에서는 “제3자에게 가깝다”를 추가해(제3자 근칭?) 거리를 넷으로 나누기도 하고, 지금 내 눈에 보이는지 아닌지(시야칭?),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상/하칭?), 다가오는지 멀어오는지 가로지르는지(내/왕/행칭?) 등등의 구분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이/그/저” 뒤에 다른 접사가 붙어 이/그/저가 가리키는 대상의 성질을 확실하게 하기도 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사람을 뜻하는 “-이”나 “-분”, “-애”가 붙어 “이이/그이/저이”, “이분/그분/저분”, “얘/걔/쟤”가 됩니다. 사물의 경우에는 “-것/거”가 붙고, 장소에는 “-어기”, 방향에는 “-쪽”, 시간에는 “-때”가 붙죠. 다른 언어들도 끝부분을 바꿔 둘 중에 무엇, 장소, 기원, 목표, 방법, 이유 등을 표시한답니다(which, where, whence, whither, whereby, wherefore). 물론 이 예시는 “이/그/저”가 아닌 “어느”에 대응하는 표현이긴 하지만요. 

물론 이게 항상 규칙적으로 붙는 것은 아니랍니다. 영어에서, {이때}라는 표현이 {이} + {-때}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단어인 now를 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일본어에서도 위치를 나타내는 표현이 こ/そ/あ {이/그/저}에 -こ를 더한 ここ/そこ/あそこ인, {저기}가 규칙적이지 않은 모습이 보입니다. 

당연히 대명사니 성, 수, 격에 따라 달라진답니다. 영어에서 가장 좋은 예시는 these(복수형) whom(인간, 목적격)이 있겠네요. 

의문

의문에 해당하는 것도 있습니다. 한국어의 “어느” 계열 대명사들을 일컫죠. 거리처럼, 이들은 다양한 형태를 가져 무엇이 의문의 대상인지 나타냅니다. 육하원칙에도 들어가는 단어들이죠. 한국어의 의문사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답니다. 

누구, 언제, 어디, 무엇, 어떠하다, 왜, 무슨, 어느, 어떤, 어찌, 어찌하다, 웬, 얼마 

다른 언어에는 다른 것들을 쓰기도 합니다. 당장 위에서도 기원, 목표 같은 것들의 영어 의문사를 보여드렸죠. 해당하는 단어가 그 언어에 없다면, 격이나 단어를 써 표현한답니다. 예컨대, whence {어디에서}, whither {어디로}, how/whereby {어떻게(어떠하다 + -게)}, where {어디/어느 곳} 같은 예시가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떠하다”와 “어찌하다”는 동사니, 대명사가 아니라 대동사가 더 맞는 표현이겠네요. “어찌”도 부사니, 대부사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겠네요. 

수량

수량도 대명사로 드러낸답니다. 대명사라는 표현보다는 대관형사(보통 한정사라고 합니다)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한국어에는 몇, 아무, 모두 등이 있습니다. 영어에는 some {몇}, any {아무}, every {모두}, no {아니/아무}, another {다른/또}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나 프랑스어로 nowhere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어느 곳도/아무 데도 아니다”라는 형태나, nulle part {아니/없다} + {-곳}이라는 형태를 써야 하죠. 

그러면 직시와 대명사를 다루는 이번 장은 이걸로 마치고, 다음 장인 「언어와 구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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