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에 담기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창창어처럼 25단어밖에 없다면 더더욱 그렇죠. 학자들의 추측에 의하면, 모국어 화자들은 모국어 어근 10,000개가량을 뇌에 집어넣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즉, “상식”, “상식적”, “비상식적”는 모두 하나의 어근(“확실”)에서 나온 단어이므로, 한 어근으로 취급했을 때 대략 만 개 정도는 익히고 있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만 개의 단어를 외우는 것도 힘든데 만 개의 어근은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숫자를 더 줄여봅시다.
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외국어로 된 글을 능숙하게 읽기 위해서는 최소한 3,000개의 어근을 알고 있어야 하고, 한·중·일 각국의 상용한자의 개수는 대만 4,808자, 중국 3,500자, 일본 2,136자, 한국 1,800자입니다. 아직 너무 많죠? 더 줄여봅시다!
중국어에서 일상에서 쓰는 1000자가 전체 단어의 90%를 차지합니다. 단어를 줄이고 줄여 빠르고 간단하게 얘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초 영어Basic English”는 정확하게 850개의 어근을 담고 있습니다. 외국어 초급 강좌에서 다루는 단어의 수는 대략 500단어쯤 됩니다. 많이 줄었지만, 500단어도 너무 많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극단적으로 줄여보자면, 통상적으로 한자의 의미를 담고 있는 부수(강江에서 물氵의 의미를 담는 부분)가 214자입니다(과거에는 540자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언어를 표방하는 토키 포나는 이론적으로는 120단어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단어들을 만들어 씁니다.
이걸 보면 제대로 된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략 500에서 1,000단어를 만들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 몇몇 문장만 번역하는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략 100에서 200단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제가 만든 필요 단어 모음집도 223단어입니다). 하지만 맨땅에서 200단어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10장에서 단어를 만드는 방법을 이미 다루긴 했지만, 이건 단어의 형태(소리)를 만드는 방법을 다룬 것일 뿐, 새로운 의미를 가진 단어를 만드는 방법을 다룬 것이 아닙니다. 이번 장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가진 단어를 만드는 방법을 다뤄보겠습니다.
먼저 9장의 내용을 복습해 봅시다. 형태소란, 의미/기능을 가진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의 형태소를 분석하면, “참” “-으로” “좋-” “-(으)ㄴ” “일” “-이-” “-(으/스)ㅂ니-” “-다”의 여덟 형태소로 분리할 수 있죠. 이 중, 의미를 가진 형태소인 “참”, “좋-“, “일”, “-이-“가 실질 형태소, 기능만 가진 “-으로”, “-(으)ㄴ”, “-(으/스)ㅂ니-“, “-다”가 형식 형태소죠.
실질 형태소에는 형식 형태소가 붙어 뜻을 바꾸거나, 문법적 기능을 바꿔줍니다. 이때 실질 형태소는 의미의 뿌리가 되니 어근根이라고 부르고, 형식 형태소는 그런 뿌리에 달라붙는 것이니 접接사라고 부릅니다. 예시를 보죠.
빚 | 빚쟁이 | 빚지다
“빚”이라는 어근에 그런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쟁이”를 더해 “빚쟁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또는, “그런 성질이 있다/그런 모양이다”이라는 뜻을 더하면서 동사로 바꿔주는 접미사인 “-지다”를 더해 “빚지다”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어근과 접사를 더해 새로운 단어를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어근과 어근을 더해 새로운 어근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손”에 “등”과 “바닥”을 더해 “손등”과 “손바닥”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이 예시죠.
그러니, 적절한 어근과 접사를 고르기만 하면, 손쉽게 많은 단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단어는 파생어/합성어인 것이 적절하고 자연스럽습니다. 1막 2장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뇌피옹”이란 단어를 만들고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굳이 스스로 하고 싶지는 않은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라는 뜻을 지정하는 것은 별로 그럴 듯하지도 않고, 지속하기도 쉽지 않죠.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새 단어를 잘 만들 수 있을지 알아봅시다!
창창어 단어 사전
마 {땅}
마룰 {물}
켓푸테 {나무}
케닐마 {풀}
룰 {별}
유사 {돌}
낫로 {사람}
미웨 {1인칭 대명사}
소테 {2/3인칭 대명사}
사테 {-이다}
키소테 {먹다}
마닐테 {잡다}
마켓테 {주다}
폿테 {좋다}
웨유테 {나쁘다}
켓웨테 {받다}
사낫테 {보다}
푸테 {앉다}
사낫 {눈}
소테푸 {내장}
룰유 {큰 것}
소키 {작은 것}
웨테 {부정}
소사 {또, 다시}
미로 {이/그/저}
타동사의 자동사화
타동사는 목적어 하나를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면, “돌아오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라는 식으로 써야하죠. 그러나, 목적어와 타동사를 하나의 동사로 합쳐버리면 더 이상 목적어를 필요로 할 이유가 없겠죠? 이미 동사가 목적어를 담고 있으니까요! 즉,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가 에서, “나는 귀가했다”로 바꾸는 식이죠. 물론, 한국어에서는 한국어의 특징 때문에 한자를 써 저렇게 달라지지만, 창창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는 그러지 않으니 그냥 둘을 합쳐버릴 수 있습니다. 물론, 합칠 때 순서를 따져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당연히, 만난 순서대로 합쳐집니다.
예시를 봅시다. “마닐테 유사” {잡다 돌 = 채석하다}라는 구가, 시간이 지나며 “마닐테유사”라는 한 단어로 합쳐지는 것이죠(창창어는 SVO 어순). 물론, 순서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석을 {돌을 잡다}가 아니라, {잡는 돌}이라고 여겨, 오히려 “유사 마닐테”의 순서를 쓸 수도 있죠(영어가 그렇습니다). 또는, 한국어처럼, 들여온 단어의 어순이 기존의 어순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문은 SVO, 한국어는 SOV 어순이기 때문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가 “나는 귀가했다”로 바뀌는 것처럼요(돌아올 귀歸, 집 가家). 물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어순에 맞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합성어의 파생어화
창창어에는 {초원}을 뜻하는 단어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쉽게 {땅}과 {풀}을 합쳐 {초원}을 의미하는 단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즉, “마 케닐마” {풀의 땅}이 합쳐져 “마케닐마” {초원}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숲}은 “마켓푸테”, {하늘/우주}는 “마룰”, {마을}은 “마낫로”, {사냥터}는 “마마닐테”, {집}은 “마폿테”, {세상}은 “마미로”같이 쓸 수 있죠. 그런데, 이렇게 “마”를 계속해서 쓰다 보면 한 가지 변화가 생깁니다. 바로 문법화죠.
“마”가 {땅}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보다, {~을 하는 장소}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마”의 뜻도 후자로 바뀔 것입니다. “마”는 기존의 의미를 잃고, 문법적 기능만을 하는 형식 형태소(접두사)가 되어 버린 것이죠. 그러면 {땅}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사라지는 건가요? 이 경우 둘 중 한 일이 일어난답니다.
먼저, “마”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식으로 “마”를 남겨놓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마”라고 반복하거나, 6번 변화 이후라면, 장음을 부여할 수도 있죠.
또는, {땅}에 해당하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단어를 재활용한다면 “마미로 소키” {작은 세상}이 될 수도 있고, 아예 새로운 단어를 만들 수도 있죠.
다른 예시를 봅시다. {사냥꾼}은 “낫로마닐테” {사람이 사냥하다/사냥하는 사람 -> 사냥꾼}, “낫로폿테” {가족}, “낫로웨유테” {적}, “낫로소키” {아기}, “낫로웨테” {극악무도한 사람/괴물}, “낫로룰” {특별한 사람, 애인}, “낫로유사” {돌머리/바보} 등등의 단어를 만들 수 있죠. 이후, 시간이 지나며 문법화가 이뤄질겁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존의 단어가 뜻을 잃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생긴 접사가 자주 쓰이면서 소리가 닳아 음소들이 탈락하며 단순화되는 과정을 봅시다.
naslo > nalo > nal
접사는 자주 쓰이기 때문에 풍화를 겪기도 쉽죠. 위의 변화는 창창어가 겪는 전체적인 변화에 포함이 안 된, 이 단어만 겪는 변화입니다. 1막 7장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음운 변화는 모든 단어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몇몇 단어는 자신만의 변화를 겪을 수 있다.” 이 법칙을 잘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따로 변화를 겪으면서 {그런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두사}의 뜻을 가진 단어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형태가 달라지면서 다의어 “나슬로”가 완전히 다른 두 단어, “날”과 “나슬로”가 되었습니다.
두 예시 모두, 기존에는 합성어였던 것들이, 동일한 구조를 가진 많은 단어들이 생기면서 동일한 접사를 공유하는 파생어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품사 변환
품사를 바꾸는 것은 매우 유용하죠! 명사를 동사로(사랑 -> 사랑하다), 동사를 명사로(얼다 -> 얼음), 명사를 관형사로(일반 -> 일반적), 동사를 관형사로(먹다 -> 먹던), 명사를 부사로(정성 -> 정성껏), 동사를 부사로(많다 -> 많이), 관형사를 부사로(새 -> 새로) 바꾸는 등, 품사를 바꿔 기존의 어근을 더 다양하게 쓸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파생(품사를 바꾸는 것을 파생이라고 합니다) 접사는 바로 명사 파생 접사와 동사 파생 접사입니다. 이 둘이 문장의 대부분을 이루니까요.
한 가지 알아둘 점은 파생 접사가 한 종류당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파생 접사마다 뜻이 미묘하게, 때로는 상당히 다를 때가 많죠. 예시를 봅시다.
얼다 + -기 -> 얼기 | 얼다 + -ㅁ -> 얼음
걷다 + -기 -> 걷기 | 걷다 + -ㅁ -> 걸음
“-기”와 “-ㅁ”은 한국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명사 파생 접미사지만, 둘의 뜻이 확실하게는 아니더라도 미묘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어의 다른 파생 접미사들을 볼까요?
- 명사 파생 접미사
- 아직 생산적임: -ㅁ, -이, -기, -개
-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음: -게(지게), -애(마개), -엄(주검), -웅(지붕) 등
- 동사 파생 접미사
- 아직 생산적임: -이다, -하다, -거리다, -대다, -스럽다, -답다, -맞다
-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음: -롭다(가소롭다), -뜨/트리다(떨어뜨리다)
- 관형사 파생 접미사
- 아직 생산적임: -적
-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음: -까짓(이까짓)
- 부사 파생 접미사
- 아직 생산적임: -이/히, -로
-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음: -내(끝내), -껏(지금껏), -금(하여금), -오/우/아(너무) 등
생산적이라는 말은 활발히 사용되며 언어에서 새로운 단어가 추가될 때마다 해당 접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해당 접사가 자주 쓰인다고 이해하셔도 됩니다.
한국어도 많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영어의 명사/관형사 파생 접미사들은 훨씬 방대합니다. 한국어로는 한자를 사용해서 주로 번역되기도 하죠.
- -age, an, -al, -ance/ence, -ce, -dom, -ee, -er/or, -eer, -ess, -hood, -ian, -ism, -ist, -ity, -ment, -mony, -ness, -ory, -orium, -ry, -y, -ship, -sis, -sion/tion, -tude, -th, -ure
- -able/ible, -ac, -(u)al, -ant, -ent, -ar, -ary/ory, -ent/lent, -ate, -ern, -ful, -ial, -ive/sive, -ic, -il/-ile, -ish, -less, -like, -ly, -ous/-os, -oid, -ose, -y
이렇게나 다양해서, 하나하나 뜻을 다 쓰는 것도 힘들 정도랍니다(워낙 서로 겹치는 경우도 많기도 하고요). 그래도,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집단, 조건, 소속, 성질, 행위, 결과, 상태, 영토, 사람, 기계, 전문가, 자격, 신자, 장소, 직업, 존재 등
- 가능성 있는, 영향 받는, 성향 있는, 관련된, {방향}으로, ~로 풍부한, ~와 닮은, ~스러운, ~가 없는 등
접사가 정말 많죠? 이렇게 많을수록 어근은 적어도 되고, 동일한 어근으로 완전히 다른 것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어근의 활용도가 높아진다는 표현을 할 수 있죠. 그래서, 적절한 양의 접사만 있다면, 적은 어근으로도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답니다. 합성어를 열심히 쓴다면 더 적은 어근을 쓸 수 있죠.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데 또 중요한 것은 비유입니다. 당장 “돌머리”와 stonehead {직: 돌머리}는 표면적인 뜻은 같지만, 한국어에서는 {멍청이}라는 뜻이 있는 반면, 영어에서는 {(약한) 마약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비유와 속담도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중요한 방법이죠. 하지만, 이 내용은 화용론과 겹치기도 하고, 이번 장도 너무 길어졌으니, 이번 장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 장 「언어와 비유」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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