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언어 창작에 성공이 가득하기를
이상으로 2막을 관람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번 막은 1막에 비해서 양도 많고, 담고 있는 지식도 더 깊었습니다. 부족한 제 설명 실력으로 전하고 싶은 정보의 1할은 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지만, 이런 정보들을 한 번에 묶어 전하는 정보원을 여태까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만든 창언창안의 2막, 흥미롭게 보셨다면 다행입니다.
2막의 내용은 1막보다는 더 본격적인 언어학 내용이었기 때문에, 한 번 읽고는 이해가 안 가실 수 있습니다. 제 부족한 설명 탓이지만, 그래도 언어학을, 언어 창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이해될 때까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설명하지 않은 전문 용어의 배제와 들어 있는 정보의 순서만큼은 신중하게, 꼼꼼하게 결정했으니까요.
창언창안의 2막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창언창안의 끝은 아직 멀었답니다. 언젠가 누구나 원할 때 자유롭게, 부담 없이 언어 창작을 할 날이 오기를 바라며, 창언창안은 계속해서 언어 창작의 도움말가, 언어 창작의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물론, 언어 창작의 개괄은 실전편인 1막과 기초편인 2막으로 끝났기 때문에, 탐구편인 3막부터는 언어 창작의 방법을 두서 있게 알아보는 것이 아닌, 개별적인, 지엽적인 특성을 알아보는 식으로 내용이 크게 변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자면, “○○어의 음운 변화”나, “○○의 형태론적 특징”같이, 언어 창작에 직접적인 도움은 안 되지만, 영감이 될 수 있는 개별적인 정보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비록 지금까지의 창언창안의 모습과 3막의 모습은 매우 다르겠지만, 그래도 창언창안을 향한 관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봐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창언창안을 읽으시면서 생긴 질문이나, 여러가지 언어학 관련된 질문이나, 언어 창작을 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기셨다면, 댓글이나 커뮤니티 질문을 통해서 알려주세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답해 드리겠습니다!
그와 함께, CCCV만의 서비스를 하나 시작하려고 합니다! 일종의 커미션인데요, 바로 창작 언어 커미션입니다! 언어 창작을 직접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거나, 시간 상 여유가 없을 때, 이미 짜 놓으신 설정을 바탕으로 언어 창작을 대신 해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이런 커미션을 하는 다른 분이 계시는지도 모르고, 저부터가 커미션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처음이라서 어떻게 가격을 책정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창작 언어는 만들고 싶은데 직접 하기에는 부담스러우신 분들께서는 부담 없이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우리나라 창작계에 더 많은 인공어가 있었으면 하는 게 제 소원이니까요!
그러면 창언창안의 3막이 시작될 때까지 커튼을 잠시 내리기 전에, 언어 창작을 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몇 마디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1. 완벽을 추구하지 말 것
무언가를 할 때, 이왕이면 잘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죠. 더군다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완벽한 대작을 만들 수 없습니다. 언어도 그렇고요.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언어 창작 자체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작품의 핍진성, 즉 설정의 체계가 단단함을 부각하는 장치로만 쓰이지, 주연으로 독무대에 오르지 못하니까요.
그러니, 창작 활동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뽑으라면 언어 창작은 슬프게도 후자에 들어갑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현실의 언어를 쓰면서, 현실의 문자를 치환하기만 한 기호를 문자로 쓰는 것도 이런 이유죠. 하지만, 저는 언어 창작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언어를 만들어 창작물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 사회/문화는 설정을 짠다면 가장 첫 번째로 짜야하는 거니까요.
그러니 언어 창작은 가볍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언어가 언어학적으로 “올바를” 이유도, 현실적일 이유도 없습니다. 때로는 현실이 더 공상 같을 때도 있고, 그건 언어도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니 언어를 만들 때 가벼운 마음으로, 창작물 안의 사회와 문화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실수하고, 완벽하지 못합니다. 현실의 언어도 완벽하지 못하고, 항상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창작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2. 언어학에 집착하지 말 것
명사가 뭐니, 동사가 뭐니, 격에 뭐가 있니, 시상에 뭐가 있니, 등등, 언어학은 파도 파도 끝이 없습니다. 언어학은 아직 역사가 짧고, 아직까지 단 한 언어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학문입니다. 언어는 그만큼 깊고 어려우니까요. 그러니 언어학과, 용어와, 이론에 집착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창언창안에 나오는 모든 용어를 다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법이 뭔지 모르겠다고요? 버리세요! 상이 뭔지 모르겠다고요? 품사도요? 다 버리세요! 사람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언어에 대한 지식, 아니 본능을 담고 있습니다. 언어학을 몰라도, 용어를 몰라도, 구조를 몰라도 본능적으로 사람은 ‘얘네는 얘네랑 비슷하지’나, ‘얘네는 대충 이런 뜻이지’ 같은 언어에 대한 원초적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언어학의 모든 걸 알려고,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흥미 위주로, 단편적인 개념들만 모아 영감을 얻어가는 선이, 제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언어 창작자가 언어학을 향해 가져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재미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굳이 힘들게 정보를 눌러 담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3. 목표를 확실히 할 것
단지 ‘언어를 만들고 싶다’가 아니라! 확실하고, 자잘한 여러 목표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이 언어는 굴절어였으면 좋겠어!’, ‘이 언어는 신비한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 언어는 유목 민족의 느낌이 나면 좋겠어!’ 같은 추상적인 목표와, ‘이 언어에는 이런 소리가 많았으면 좋겠어!’, ‘이 언어에는 이런 종류의 단어가 많았으면 좋겠어!’, ‘이 언어에는 이런 문법이 있으면 좋겠어!’ 같은 구체적인 목표까지, 여러 목표를 확실하게 정해 그 목표들을 이루려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너무 많이 설정하거나, 창작 과정 중에 새로 추가하지는 말아 주세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고, 지나치느니 미치지 못한 것과 같으니까요.
언어 창작은 쉽게 다른 길로 새기 쉽고, 쉽게 자신의 손을 벗어나기 쉽습니다. 마치 점토를 빚는 것과 같죠. 손을 잘못 놀린다면 생각치도 못한 방법으로 모양이 달라진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물레의 달인이 되어 모든 행동을 완벽하게 계획하고 필요없는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완벽한 그릇을 빚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니, 창작의 모든 단계를 저장하고, 언제나 돌아갈 준비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손을 잘못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걸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뒤로 돌아가는 편이 더 빠르고 편하니까요. 이게 컴퓨터로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물론, 모든 목표를 달성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목표란 이정표기도 하니까요!
4. 양보다는 관계
단어를 만들면서, 어근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어근과 접사를 이용해 새로운 단어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문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문법을 보여드리느랴 미처 못 설명드렸지만, 문법도 모든 문법 기능에 해당하는 요소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요소로 새로운 문법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격이 다른 격의 기능을 할 수도 있고, 한 접사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어순을 바꾸는 것으로 문장의 태도를 바꿀 수 있고, 단어의 소리, 다른 단어 같은 다른 분야의 특징을 가져와 문법 기능을 하게 만들 수도 있죠.
한문의 말이을 이而를 봅시다. 이 한문은 말 그대로 말을 잇는 기능을 합니다(似而非, {같으나 다르다}, 같으: 似, 나: 而, 다르다: 非). 그런데, 의미로는 {곧/그리고/그러나/그리하여/그런데/그러고서/부사 파생 접미사}의 기능을 하는, 중의성이 넘쳐나고 이해는 하나도 안 가는 한자입니다. “말씀”은 남의 말을 높일 때도, 내 말을 낮춰 남을 높일 때도 둘 다 쓰는 단어입니다. 두 뜻은 겉보기엔 완전히 반대죠. 현실도 이런데, 구태여 모든 문법 기능에 문법 요소를 겹치지 않게 하나씩 담을 필요가 하나도 없답니다.
양보다는 관계, 구조, 의미가 중요하답니다. 언어는 결국 한정된 자원(말하는 시간, 기억력) 안에 어떻게 의미를 집어넣는지가 중요하니까요. 그러니 무작정 의미를 집어넣지 않고, 중의성과 모호함을 잘 이용해 독창적인 언어를 만드는 것을 추천합니다. 더군다나, 현실의 언어는 모두 “비상식적”인, “비이성적”인, “비논리적”인 모습이 있답니다.
5. 재료보다는 형태
같은 속과 같은 피로 만두를 빚어도, 다양한 모습의 만두를 빚을 수 있답니다. 언어도 똑같답니다. 일본어와 스페인어의 음소는 공통점이 많지만, 듣기에는 크게 다릅니다. 아무리 음소가 같더라도, 즉 같은 재료더라도, 어떻게 요리하고 어떻게 모양을 내느냐에 따라 결과물, 즉 언어의 형태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답니다.
언어의 독창성은 어떤 재료를 넣느냐/빼느냐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닌, 어떻게 조리할 거냐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더군다나 한글의 제약이 있는 한국어 창작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무슨 언어를 만들더라도 결국에는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는 사실은, 독특한 음소만 골라 담아봤자 결국 다른 재료들과 분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쉬운 발음 위주로 사용하되, 독창적인 구조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양보다는 관계, 재료보다는 형태입니다.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도, 한 번도 그 재료를 접한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뭐가 뭔지 모를 뿐이니까요.
이 도움말들이 힘든 언어 창작의 길을 조금이나마 내딛기 쉽게 닦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어를 실험해 보기 가장 좋은 방법은 번역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번역을 하며 다양한 상황에서 이 언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원하던 결과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창언창안은 제가 처음으로 써 본 무언가를 설명하는 글이라 많은 면에서 부족함이 많습니다. 제가 봐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가 쓴 글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서 여러분 앞에 내놓았습니다. 여러분의 창작 활동에 무궁한 창의력과, 탄탄한 필력이 가득하시기를 빌며, 「창작물을 위해 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창작자들을 위한 안내서」의 2막을, 1막의 맺음말과 동일한 말로 맺습니다. 혹시라도 창언창안을 계기로 언어학에 관심이 생기신 분들은 막간 휴식 이후 꼭 3막까지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 3막은 2막보단 분명 더 가벼울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재차 감사의 말씀 드리며, 이만 2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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