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역사
토트: 그래서, 너도 문자를 만들었다고?
창힐: 그래. 지나가는 새의 발자국을 보고 만들었지.
토트: 그래? 난 내 머리가 따오기라는 샌데 말이야. 우연일까?
창힐: 모르지. 새가 지혜로워 보인 걸 수도 있지.
토트: 어쨌든. 넌 문자를 어떻게 만들었는데?
창힐: 네가 한 대로야. 사물을 보고, 그림으로 그린다.
토트: 하! 사람 생각하는 건 어딜 가나 똑같나 보구만.
창힐: 뭐,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토트: 그럼, 그릴 수 없는 건 어떻게 했어? 이름이라던가, 추상적인 거라던가…
창힐: 역시 네가 한 대로지.
토트, 창힐: 한 글자의 소리를 가져오고, 다른 글자의 뜻을 가져오고.
창힐: 그래도 너가 한 것보다는 더 효율적으로 했어.
토트: 그래? 어떻겐데?
창힐: 넌 한 음절을 여러 글자로 적었잖아. 〈딸〉을 예로 들면, 나는 [달]을 뜻하는 그림에다가 {사람}이나 {여자}를 뜻하는 그림을 덧붙여 〈딸〉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면, 너는 〈딸〉이라는 걸 쓰기 위해서 [딸], [ㅏ], [ㄹ]을 각각 대표 소리로 가지는 글자를 가져오고 거기에 {여자}를 뜻하는 그림을 덧붙여 네 글자로 썼잖아!
토트: 그래도 난 한 글자 한 글자가 너보다 더 간단하잖아. 그리고 나는 [ㅏ]를 대표 소리로 가지는 글자 같은 거 만든 적 없어. 우리 언어는 모음이 별로 안 중요했거든. 거기에다가, 내가 그렇게 소리를 적은 덕분에 지금의 세상이 만들어진 거 몰라?
창힐: 우리 문자를 기반으로도 표음문자 만들어졌거든? 거기에다가, 네 덕분도 아니잖아!
지나가던 가나안 사람: 그래, 우리 덕분이지! 우리가 니네의 이상하고 복잡한 문자 체계를 얼마나 단순화했는데!
토트: 흥! 못 배운 상놈들이 훔쳐 간 거에 지나지 않으면서.
가나안 사람: 뭔 소리야! 우리는 한 자음에 한 문자만을, 그니까 엄청 간단한 문자에 한 자음을 배정했다고! 우리가 현대 표음문자의 시초야! 여기 봐봐! 앗… 아직 보여주기에는 유니코드 인코딩이 안 돼 있구나… 돼 있어도 다 깨져 보일 테고…
토트: 뭐라는 거야?
창힐: 몰라, 저래서 요즘 것들은…
토트: 야, 내가 보기엔 너도 요즘 거거든?
창힐: 엔메르카르 불러와 봐? 앙? 어디 쐐기 문자 앞에서도 그런 소리 할 수 있나 보자고.
토트: 이게―
타우투스: 야야, 저리 나와봐. 여기, 이것 좀 보세요. 이건 최초로 확립되고 널리 쓰인 표음문자인 페니키아 문자입니다. 𐤀 𐤁 𐤂 𐤃 𐤄 𐤅 𐤆 𐤇 𐤈 𐤉 𐤊 𐤋 𐤌 𐤍 𐤎 𐤏 𐤐 𐤑 𐤒 𐤓 𐤔 𐤕 자. 잘 보이죠? 글자 하나하나가 깔끔하게 한 자음과 연결돼 있고, 쓰기도 편하죠? 얼마나 좋아요?
토트: 쯧…
카드무스: 야, 그거 내가 좀 가져가도 되냐?
창힐: 얜 또 누구야?
카드무스: 아, 전 그리스 문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페니키아 출신 테베의 건국왕입니다. 뭐… 기록마다 누가 문자를 만들었는지는 다르긴 하지만요… 아, 이건 제가 만든 그리스 문자입니다. Α Β Γ Δ Ε Ζ Η Θ Ι Κ Λ Μ Ν Ξ Ο Π Ρ Σ Τ Υ Φ Χ Ψ Ω 어때요, 페니키아 문자랑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죠? 그리스어는 모음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희는 페니키아어에는 있지만 그리스어에는 없는 소리를 가지는 문자를 그리스어의 모음을 적는데 썼답니다!
카르멘타: 그리고 저는 그리스 문자를 변형해 로마자를 만든 신으로 여겨진답니다! 헤르메스와 저 사이의 아들인 에우안드로스가 로마를 세운 일행 중 한 명으로 가 로마자를 전해줬죠. A B C D E F Z H I K L M N O P Q R S T V X 옛날에는 이거 밖에 없었고, 중세와 르네상스를 지나며 G J U W Y가 추가돼 지금의 로마자가 되었죠.
오딘: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내가 룬 문자를 만들었죠. 사람들한테는 창에 찔린 채로 세계수에 목을 9일 간 매달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긴 했지만…
페니우스 파르사: 저는 아예 바벨탑까지 가서 세상의 모든 언어의 가장 좋은 점만 따서 우리 아일랜드어를 만들고 완벽한 문자인 오검 문자를 만들었다고 그랬는데… ᚛ ᚁ ᚂ ᚃ ᚄ ᚅ ᚆ ᚇ ᚈ ᚉ ᚊ ᚋ ᚌ ᚍ ᚎ ᚏ ᚐ ᚑ ᚒ ᚓ ᚔ ᚜ 어때요? 신기하게 생겼죠?
토트, 창힐: 아아, 아툼/복희시여… 이 무슨…
아소카: 그리고 페니키아 문자는 반대쪽으로도 퍼졌죠. 페니키아 문자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아람 문자는 동으로 퍼져 브라흐미 문자가 되었답니다.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 제 칙령이 브라흐미 문자로 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 제가 등장했다고 내레이터가 그러더군요.
람캄행: 인도 대륙에 널리 퍼진 문자는 수많은 학자들의 손에서 각 언어에 맞게 수없이 재발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교와 함께 동으로 가 동남아시아까지 닿았죠. 저는 이들을 바탕으로 새로 태국 문자를 만들었답니다!
타타통가: 아시아 위쪽으로도 퍼진 페니키아 문자, 이젠 아람 문자는 위구르 문자를 거쳐 몽골 문자, 만주 문자까지 이어지게 되었답니다. 저는 칭기즈 칸의 명을 받아 위구르 문자를 바탕으로 몽골 문자를 만들었죠.
설총: 반대로 이쪽에서는 한자가 가진 뜻과 소리를 잘 끼워 맞춰 우리의 언어를 쓸 수 있게 바꿨죠. 우리는 그걸 이두라고 불렀고…
쿠카이: 우리는 그 방법을 만요가나라고 불렀죠. 그리고 우리는 더 나아가서 한자를 간소화해 한 음절을 한 글자로 바꿔버렸답니다! 예컨대 カ가 [가]라는 뜻이죠. 저희 승려들은 한자의 부분을 떼내어 만든 가타카나를 썼고, 여인들은 한자의 초서체에서 유래한 히라가나를 썼답니다.
창힐: 그래! 우리 쪽도 표음 문자 있다고 그랬잖아!
토트: 그래, 그래, 좋겠다. 내 발명품은 유럽과 인도의 많은 언어들, 아랍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많은 언어들이 쓰는 문자의 조상인데 말이지.
창힐: 쳇.
이도: 이제 저만 말하면 끝인가요? 아니 뭐 사실 훈민정음은 다들 아실 테니 굳이 설명해야 되나… 이제 슬슬 내레이터한테 마이크를 줄 때가 되지 않았나요?
토트: 우리는 훈민정음 모르는데?
창힐: 그래, 거기다가 내레이터라니?
네! 바로 접니다! 문자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재밌으셨으려나요? 그럼 이제는 쉽게 문자를 만드는 법을 알아봅시다.
한글 암호화
문자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한글 낱자 하나하나를 바꾸는 겁니다. ㄱ는 뭐, ㄴ는 뭐, ㅏ는 뭐, 이런 식으로요. 어차피 창언창안에서는 한글을 바탕으로 언어를 만드는 법을 택했기 때문에 이게 잘 먹혀들겠죠? 거기에다가 초성에 오는 ㄱ과 종성에 오는 ㄱ을 다른 문자로 쓴다면 더 특색 있지 않겠어요? 물론, 다른 문자 표기법이 많답니다. 그런데 이런 문자를 만들게 된다면 한글을 일대일대응해서 글자를 만드는 편한 방법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 주세요.
첫 번째는 알파벳입니다. 알파벳은 표음문자(소리를 담은 문자) 중 자음과 모음을 모두 별개의 글자로 적는 문자 체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대표적으로는 한글, 로마자, 그리스 문자 등이 있습니다. 이 체계로 문자를 만들면 위의 한글 하나하나를 바꾸는 것에 해당하게 되겠죠?
두 번째는 아부기다입니다. 아부기다는 표음문자 중 자음만이 글자이고, 모음은 자음에 덧붙이는 문자 체계입니다. 대표적으로는 데바나가리 문자, 태국 문자, 파스파 문자 등이 있습니다. 다들 생소한 문자들이니 예시를 보죠. प는 [파]입니다. पि는 [피]이고, पु는 [푸], पे는 [페], पो는 [포]랍니다. [파]를 뜻하는 글자에 획을 더해 다른 모음을 표기하는 걸 알 수 있죠. 그외에도 पं, [팜]이나 पः, [파흐]처럼 한 음절의 종성도 글자를 더해 나타내기도 합니다. 모음만 있는 음절이면 어떡하냐고요? 각 모음마다 문자가 있긴 하답니다. अ[아], इ[이], उ[우], ए[에], ओ[오]. 하지만 이건 모음만 있을 때만 쓰이죠.
세 번째는 아브자드입니다. 아브자드는 표음문자 중 자음만을 적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바다, 보도, 부두를 모두 〈ㅂㄷ〉로 적는 셈이죠. 이게 가능한 이유는 아브자드를 쓰는 언어들은 ‘대개’ 모음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음을 꼭 표기해야 하는 경우나 모음이 중요한 언어의 경우 아부기다처럼 자음 글자에 모음을 나타내는 점이나 선을 더해 표기한답니다. 아브자드에는 아랍 문자, 히브리 문자 등이 있답니다.
네 번째는 음절 문자입니다. 음절 문자는 위의 세 체계와는 다르게 음절 통째로를 한 글자로 적는 것이 차이점입니다(위의 세 체계는 분별 문자라고 부른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음절 문자인 가나를 봅시다. 가타카나 기준, カ[카], キ[키], ク[쿠], ケ[케], コ[코]라고 쓰죠. 물론, 가나의 다른 특징은 받침에 해당하는 글자가 따로 있어서 [칸], [킨], [쿤], [켄], [콘]을 뜻하는 글자를 새로 만들 필요 없이 カン, キン, クン, ケン, コン으로 적으면 된다는 거죠. 한글도 음절 문자의 특징이 있는데요, 〈ㅎㅏㄴㄱㅡㄹ〉로 풀어쓰는 것이 아닌 〈한글〉로 음절 단위에 맞춰 모아쓰는 게 음절 문자의 특징이죠. 만약 한글을 진정한 음절 문자로 바꾼다고 한다면 완성형 기준 2350자,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는 11172자이니… 시간이 엄청엄청 남으시면 시도하시기 바랍니다.
다섯 번째는 표어 문자입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한자를 말합니다. 현재까지 쓰이는 거의 유일한 표어 문자이기 때문이죠(이모지를 문자로 보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지만…). 표어 문자의 특징은 한 글자에 한 단어가 대응된다는 점으로, “天은 하늘, 地는 땅, 日은 해, 月은 달”하는 식으로 글자의 소리가 아닌 글자의 뜻이 중요하죠. 만약 표어 문자를 만드신다고 하시면… 가능은 하지만 매우 오래 걸린다는 점만 언급하겠습니다. 육서를 참고하라는 말도요.
문자 그리기
이제 어떻게 문자를 그릴지 알아봐야겠죠? 로마자와 한글을 봅시다. bdpq는 모두 똑같은 문자를 이리저리 돌린 거죠? vuw라던가 ce, ijl, nm 등등,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잖아요. 한글도 글자 하나하나는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선 하나나 두 개를 더 그은 수준이죠? 이렇듯 문자는 비슷하게 생겼답니다. 이유를 찾자면… 종이 위에 단순한 획으로 그릴 수 있는 간단하 모양에는 한계가 있고, 한 문자를 만들면 그거랑 비슷한 글자를 만들어야 문자를 다 외우기 쉬우니까요. 히라가나나 가타카나를 외워본 적이 있으시다면 얼마나 어려운 지 아실 거에요. 다 다르게 생겼으니 이놈이 저놈인지 자꾸 헷갈리잖아요? 전 개인적으로 아직도 め의 소리를 까먹는답니다.
특히 필기체같은 느낌을 줄려고 한다면 필기체가 있는 문자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답니다. 대표적으로는 로마자, 키릴 문자, 그리스 문자가 있죠. 이외에도 보이니치 문서나 텡과르같은 가상의 문자를 찾아봐도 되죠.
가장 좋은 것은 종이 위에 여러 번 써보는 것이랍니다. 예문을 몇 개 만든 다음, 직접 적어 보세요! 예문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면, 다음의 글을 사용해 보세요! 없는 단어는 굳이 만드려 하지 말고 비워도 좋습니다.
해와 북쪽 바람이 “누가 더 강하냐”를 두고 싸우고 있었다.
그때, 한 나그네가 두꺼운 옷을 입고 지나갔다.
둘은 “나그네의 옷을 먼저 벗기는 자가 더 강한 자”라고 결정했다.
북쪽 바람이 온 힘을 다 해 바람을 불었지만, 바람이 불수록 나그네는 옷을 더 여밀 뿐이었다.
결국 북쪽 바람은 포기했다.
그러자 해가 따뜻하게 빛났고, 나그네는 바로 옷을 벗었다.
그렇게 북쪽 바람은 “해가 더 강한 자”라고 인정했다.
너무 길다면, 다음의 짧은 글을 써봅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동등한 존엄을 가진다. 사람에게는 이성과 양심이 있다. 사람은 서로를 형제처럼 여겨야 한다.
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신으로 섬깁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올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을 주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고
우리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위 세 문구는 언어의 예문으로 자주 쓰이는 「북풍과 태양」, 「세계인권선언 제1조」, 「주기도문」입니다. 뒤의 두 개는 필요에 의해 여러 언어로 번역된 김에 예문으로 쓰인다면, 「북풍과 태양」은 단순한 단어와 문법으로 그 언어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예문이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많이 쓰인답니다.
모든 종류의 한글을 쓰고자 한다면 한국어 팬그램을 사용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다람쥐 헌 쳇바퀴에 타고파”같은, 최대한 많은 종류의 한글 낱자가 들어있는 문장들이랍니다.
이외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를 예문으로 써서 여러 문자를 실험해보세요! 쓰기 편해야 한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뭐… 한자가 “쓰기 편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개 문자는 쓰기 편한 게 중요하니까요. 필기체도 그래서 있는 거고요. 쓰기 편하기 위해 형태를 뭉게면서도, 각각은 어느 정도, 적어도 단어의 형태는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며 줄타기를 잘하는 것이 문자를 만드는 것의 핵심이랍니다!
그럼, 힘내서 문자를 만들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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