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4장 ― 언어와 문화

지금 이 장면에 이르기까지

앞의 두 장에서는 언어가 갈라져 나온 과정 두 가지를 봤습니다. 하나는 물리적 거리로 인해 새로운 언어가 생겨나는 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거리로 인해 언어 안에서 차이가 커지는 과정이었죠. 이번 장에서는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로 인해 언어가 영향을 받는 여러 면모들을 한 데 모아보려고 합니다.

위신

바로 전 장에서 잠깐 다룬 사회 계층별 언어 분화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계속해서 말씀드리듯, 언어는 문화의 정수입니다. 그러니 명망 있는 사회 계층이 쓰는 언어는, 그 언어 자체가 명망을 가지게 됩니다. 언어(방언) 자체가 가진 명망이나 위엄을 ‘위신’이라는 용어로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니, 사회적, 문화적 명망은 곧 그 언어의 위신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고대 그리스어를 봅시다.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철학자들과 글들이 높은 문화적 명망을 얻자, 그 명망이 고대 그리스어 자체에 옮겨가 고대 그리스어가 위신이 높은 언어가 되었습니다. 라틴어를 볼까요? 라틴어는 중세 유럽에서 성직자, 법조인, 학자들의 언어였고, 이들의 사회적 명망이 라틴어한테 옮겨붙어 라틴어의 위신이 높아졌죠. 히브리어는 구약의 언어라는 측면에서 위신을 얻게 되었고, 아랍어는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위신이 높아졌고, 고대 중국어(한문)의 위신은 굳이 말할 것도 없겠죠?

반대로, 명망이 낮은 사회 집단의 언어는 위신도 낮아집니다. 영국의 예시를 들자면 북부나 서부의 방언이라던가, 미국의 예시를 들자면 이탈리아/아일랜드/흑인/스페인 집단의 방언이 낮은 위신을 가지고 있죠. 예로부터 차별받는 집단들이었으니까요. 또한, 중앙집권이 강력한 나라일수록 표준어에서 먼 방언의 위신이 낮아지죠. 한국어와 프랑스어 등이 예시가 되겠네요.

그러나 위신이 단순히 언어의 사회적 지위에서 끝나는 건 아닙니다. 높은 사회적 지위는 동경을 끌어내고, 낮은 사회적 지위는 배척으로 이어지죠.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상류층의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이 쓰는 언어가 ‘표준’이니까요. 현대에 들어서는 아예 표준어로 지정되기까지 했고요. 또한, 높은 위신은 변화에 대한 강한 저항성을 가져다줍니다. 위신이 높은 언어는 글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쉽게 드러나며, 사람들은 대개 언어가 변화하지 않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그것이 더 ‘가치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위신이 높은 언어를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고 하죠. 반대로, 위신이 낮은 언어는 그게 변하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저항이 없으며(물론 민족주의 같은 다른 요인이 없을 때만), 오히려 위신이 높은 언어를 따라가려 하다 크게 변해버리기도 하죠(영어처럼).

창작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설정의 원류인 유럽에서의 라틴어를 봅시다. 라틴어는 당연히 변화하는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상류층들은 자신의 언어가 변화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고전 라틴어를 그대로 쓰고 있었죠. 하지만 하층민들은 라틴어의 변화를 주도하며, 민중 라틴어를 사용했습니다. 둘의 차이를 현대에 비유하자면 표준 한국어와 인터넷 은어의 차이쯤이 되겠네요. 민중 라틴어는 고전 라틴어를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 반대는 힘든 상황이죠. 그러다가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더 이상 각 지역이 서로 교류할 수 없게 되자 민중 라틴어는 점차 분화해 현대의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등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전 라틴어는 소수의 사람들이 원래의 발음과 문법을 최대한 지켜가며 사용했고, 그 결과 지금의 교회 라틴어가 되었죠. 고전 라틴어와 교회 라틴어는 서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전 라틴어에서 구어체로 녹아들어 간 단어들이 있죠. 전문 용어 같은 것들이요. 그런 것들은 생긴 건 라틴어지만, 정작 읽는 법은 각 언어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이렇게 위신에 따라 언어의 운명이 갈리기도 한답니다.

그럼 중국어를 볼까요? 고대 중국어 이후 중국어는 당연히 달라졌지만, 글은 그대로 남아 한문의 형태로 고정되었죠. 그런데 글은 고대 중국어인데, 말은 중세 중국어라면, 글과 말이 완전히 달라지겠죠? 그래서 고대 중국어를 그대로 쓴 글은 한문(정격한문)이라고 했고, 당시에 쓰이던 말을 적은 것을 백화문이라고 했답니다. 한국어로 치자면 연철과 사라진 훈민정음 낱자들을 사용해 세종대왕 당시에 쓰이던 언어를 그대로 적은 것과 지금의 인터넷에서 쓰이는 한글의 차이려나요? 그리고 당연히도 한자 한 글자 한 글자도 소리가 변했겠죠. 그래서 각 지역의 사투리로 이미 정착된 소리와 표준어의 소리가 차이가 나게 됩니다. 물론 문법도 차이가 나죠. 그래서 현재 표준 중국어(보통화)가 아닌 다른 언어(광둥어, 객가어, 민남어 등)를 사용하는 경우 예전처럼 글과 말이 완전히 따로 노는 상황입니다. 다른 동아시아를 예시로 들 수 있는데요, 한 한자를 한국어에서 읽는 방법, 일본어에서 읽는 방법, 베트남어에서 읽는 방법이 다 다른 이유는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지방에서 한자를 수입했기 때문이죠.

언어의 위신은 현대까지도 큰 영향을 지니고 있답니다. 세계 각지에서, 미국의 강한 문화적, 기술적 영향력 때문에 언어에 영어가 들어오고, 뭔가 영어로 적혀 있으면 ‘폼’나 보이고, 영어를 학습하고, 영어를 선망하는 것은 모두 영어의 위신 때문이죠. 그리고 영어가 선망하는 프랑스어도 높은 위신을 가져, 프랑스어로 뭔가 말하면 있어 보인다고 여기고요. 게임이나 창작물을 보면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높은 확률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등 있어 보인다는 느낌의 언어에서 오거나, 아니면 유명한 신화의 언어인 히브리어, 고대 노르드어나 아일랜드어에서 유래하는데 그치죠. 이 역시 언어의 위신에서 오는 현상이랍니다.

피진과 크리올

두 언어가 만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전에 이미 다룬 내용입니다. 그러면 한 언어밖에 쓰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두 무리가 만나면요? 통역을 할 줄 아는 사람이나 공용어가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물건을 가리키며/행동을 하며/손짓발짓을 해가며 동시에 말한다면 상대방이 대충 뭔 뜻인지는 이해할 수 있죠. 인간은 소통을 하도록 진화해 온 소통의 귀재니까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각자의 언어만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둘의 언어가 동시에 쓰이며 굉장한 단순화를 거치죠. 왜냐면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야 하니까요.

극단적으로, 주인과 노예의 언어가 다르면 주인이 노예를 데리고 다녀서 얻을 이익이 뭐겠습니까? 말을 알아들어야 혹사를 시킬 수 있는데. 그러니 주인이 “물 떠와”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물”이라고 말하거나, “오늘은 밭에 쟁기질 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오늘, 밭, 쟁기”라고 말하겠죠. 노예는 “머리가 엄청 아파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여기, 아파, 아파”라고 하거나, “이미 다 했어요”가 아니라 “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상하관계가 확실한 예시뿐만 아니라, 둘이 대등한 교역 관계(피진의 어원은 아마 비지니스를 중국식으로 잘못 읽은 데서 나왔다는 게 정설입니다)에서도 이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밖에 없겠죠. 단순화는 문법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소리에서도 일어납니다. 상대가 ㄱ ㅋ ㄲ의 차이를 모른다면, 설명할 수도 없으니 그냥 하나로 인식하는 수밖에 없겠죠. 이렇게 단순화된, 소통을 위해 급조된 언어가 피진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두 무리가 섞이면서 이 언어를 아기 때부터 사용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피진은 급격한 변화를 겪기 시작합니다. 피진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데 그걸 언어가 다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가며 진정한 언어다운 언어를 만들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이런 현상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근대 이전에는 먼 거리를 거치며 교역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고 사라지고 했겠지만, 현대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크리올어는 제국주의의 결과로 생겨났답니다. 여기저기서 노예를 끌고 와서 머나먼 땅에 떨궈 놓고서는 일을 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났죠. 또는, 정복의 결과 피지배층과 지배층의 소통을 위해 생겨나기도 했고요. 안타깝고 슬픈 역사지만, 언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새로운 언어가 생겨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탐구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기존의 여러 언어, 즉 영어나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심지어 한국어도 크리올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 생겨났고, 코이네 그리스어(성경이 쓰일 당시의 그리스어)는 확실하게 크리올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죠.

피진과 크리올을 작품의 설정에 넣기는 힘들겠지만, 알아두면 좋을 상식 같아 다뤄봤답니다!

언어와 이념

언어는 항상 간접적으로, 어쩌다 보니, 부가적으로 변하는 게 아닙니다. 의도를 가지고 언어를 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움직임은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있었죠. 이런 운동 중 가장 역사가 깊은 것은 아마 언어 순화 운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주 다룬 상류층이 자신들의 언어를 하층민들의 언어와 분리하고,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에서부터, 그리스어, 튀르키예어, 한국어의 언어 순화 운동까지, 동서고금 인기가 많은 운동이었답니다. 차이가 있다면 옛날에는 신분적 차이를 두기 위함이었다면, 지금은 민족적 차이를 두기 위함이라는 거겠네요.

정치적 올바름도 언어를 바꾸는 이념의 일종입니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이 영향을 미치는 어휘는 언어 순화 운동과는 종류가 다르지만, 두 운동 모두 어휘의 교체를 의도적으로 이끄는 것이 목표라는 면에서 같죠. 물론 항상 이런 운동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한 사례로는 프랑스어를 들 수 있겠네요. 프랑스어는 한 때 언어 순화 운동을 열심히 진행했지만(그 결과물 중 하나가 유럽 언어 중 거의 유일하게 컴퓨터computer가 아닌 완전히 단어인 ordinateur를 쓴다는 거죠), 지금은 영어의 영향력을 막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영어 어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중의 언어 사용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자발적으로 언어를 통제하게 하지 않는 이상(정치적 올바른 용어 사용처럼) 어느 한 단체가 어휘를 강제하는 것은 먹히지 않습니다.

언어 순화 운동은 다른 면모로 역사 속에 등장합니다. “올바른 문체를 사용하자”는 조선과 중국에서 자주 등장했던 지시였죠.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한문은 고대의 언어고, 당시의 언어와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백화문은 한문과 큰 차이가 있었고, 백화문은 어디까지나 잡스러운, 소설이나 풍문을 적는 용도였지, 공문서를 적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공문서나 과거에서까지 백화문이 쓰이자(마치 공문서에 웹소설 글체를 쓰는 것처럼) 이를 두고 볼 수 없던 정부에서 올바른 문체를 사용하자고 한 것이죠. 이는 어휘를 강제한 것뿐만이 아닌, 문법마저 강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표준어입니다. 표준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한 언어의 표준을 정해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어야 하겠지만, 사적이거나, 공적이지만 굳이 공식적일 필요가 없는(드라마나 예능 같은) 영역에서도 표준어를 강제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문법의 사소한 실수를 잡아 뜯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맞죠. 이는 과거에도 똑같아, 당대의 표준어라고 할 수 있는 귀족들(즉, 고전 작품의 옛날)의 언어를 굳이 굳이 따라 하려고 하며, 그러지 못한 자를 교양이 없다고 깔보는 역사가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4세기 경의 신학자 겸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옛날 발음 습관이 마음에 들어 간직하고 또 가르치는 사람이, homo라는 단어를 발음하면서 만일 문법에 거슬러 첫음절을 기식음 없이 omo라고 발음한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 사람으로서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당신의 계명에 거슬리는 짓인데, 사람들은 저런 미움을 갖는 일보다 이런 발음을 두고 훨씬 심하게 불쾌하다고 할 것입니다.

라는 기록을 봤을 때, 과거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맞춤법 개정도 언어와 이념 중 하나입니다. 한국어의 맞춤법은 세종대왕 이후 대중들이 자율적으로 정해 쓰다 1905년 최초의 공식적으로 권위 있는 맞춤법인 신정국문이 나오고, 여러 맞춤법 개정안들이 나오다 현대의 맞춤법인 1988년 한글 맞춤법이 나오며 현재의 한글이 되었습니다. 물론 1988년 이후 꾸준한 개정이 있었죠. 다른 언어를 볼까요? 프랑스어는 국가 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에서 맞춤법을 비롯한 표준어를 관리하고, 다른 많은 언어들도 비슷한 기관들이 있죠. 덕분에 변화하는 언어에 맞춤법이 따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어와 일본어죠. 일본어의 역사적인 맞춤법은 천 년 넘게 그대로였던 덕분에 발음과 완전히 멀어졌고, 이후 맞춤법 개혁을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한국어처럼요! 그러나 저런 국가 기관이 없는 덕분에 천 년 전의 맞춤법을 그대로 쓰는 언어도 있죠. 바로 영어입니다. 덕분에 표기와 발음이 완전히 따로 놀게 되는 것이죠. 이렇듯 맞춤법 개정 또한 그걸 실행할 능력이 있는 기관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대중이 맞춤법 개정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언어의 부활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히브리어죠. 이미 히브리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종교 의식용으로만 내려오던 히브리어를 부활시키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히브리어가 부활해 다시 사람들의 입말로 쓰이고,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생기며 히브리어는 다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언어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체계적인 문법과 많은 어휘가 생존해 있어야 하죠. 그리고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에게 새 언어를 가르쳐야 하니까요. 때문에 강한 의지가 정부과 국민들 양쪽에 있지 않는 한, 이뤄지기 쉽지 않죠. 하지만 그렇기에 대단한 업적이 되는 것이죠. 마치 피라미드를 세우는 것처럼, 사람들의 정신에 길이 남을 기념비를 세우는 업적이니까요. 

이번 장은 다른 장에 비해 더 난장판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러 유익한 정보들을 얻어 갈 수 있으셨으면 합니다! 그럼 이걸로 4장을 마치고, 다음 장, 「언어와 문법」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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