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5장 ― 언어와 문법

가장 필수적인

1막 6장에서 기초적인 문법을 다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다룬 문법은 간단한 문장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문법이었기 때문에, 이번 막에서 목표로 하는 “어느 정도 구사가 가능한 언어”에는 못 미칩니다. 그러니, 이번 장에서는 편지를 쓰거나, 설명서를 쓰거나,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문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1막 6장에서 다룬 내용을 복습해보죠. 문장에는 주어, 서술어, 목적어가 있습니다. 언어마다 이들의 역할을 표시하는 방법이 다르고, 대부분의 언어에서 쓰는 방법인 1. 조사 2. 끝부분 변경 3. 순서를 소개해 드렸죠. 거기에 더해 한국어의 어미를 처리할 방법과 수식어/피수식어에 대해 다뤘었습니다.

제가 1막 6장에서 소개해 드린 방법인 한국어를 정형화해서 분해한 다음, 각각을 따로 번역한 다음에 다시 짜맞추기는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잘 쓰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잘 분해할 수 있어야 하겠죠. 그리고 이 방법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 한국어에서 번역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어에 문법을 1대1로 바꾼 문법밖에 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짧고 쉬운 문장을 번역하면 별 문젠 없겠지만, 본격적인 언어를 만들고자 할 때 한국어의 문법을 옮긴 언어만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니 한국어 문장을 해체할 때 잘 해체해야 합니다. 방금 전 문장을 해체해 보죠. “그러 + 하다 + -니/한국 + 어/문장 + 을/해체+ 하다 + -ㄹ/때/잘/해체 + 하다 + -어야 하다 + -ㅂ니다”라고 해체할 수도 있고, “그러니/한국어/문장 + 를/해체하다 + -ㄹ 때/잘/해체하다 + -어야 하다 +ㅂ니다”라고 할 수도 있겠죠. 전자는 더 세세히 해체해 남아있을 만한 한국어의 느낌을 최대한 잘라 더 한국어에서 분리된, 더 정리된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자른 다음을 봅시다. 1막 6장에서는 모든 문법적 개념을 옮겼지만, 사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위의 문장을 영어로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Therefore, when you break up Korean sentences, you need to break it up well.” 정도가 되겠지요. 각각을 순서대로 적으면 “그러니/때/너 + 가/해체하다/한국어/문장 + 들/너 +가/해야 하다/해체하다/잘”이 되겠습니다. 사라진 부분도 있고, 오히려 추가된 부분도 있고, 순서도 완전히 달라진 걸 볼 수 있죠? 그러니 번역을 할 때 단순히 모든 부분을 1대1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더하고 뺄 필요가 있습니다. 순서도 크게 바꿀 필요도 있고요.

하지만 원래 문장이 아예 없다면 “Therefore,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at you need to break up Korean sentences well in the first place.”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의미만 통하면 되는 의역을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 문장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그러니 가장 중요한 점은 처음부터 한국어 문장을 잘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이라는 것은 굉장히 어렵죠. 난해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어떤 새로운 방법이 없을까요?

네. 없습니다. 새로운 형태 문법을 써서 문장을 만들려면 정말 제대로 다양한 문법적 개념들을 익히고 상당한 문법적 체계를 짠 다음에 정해진 위치에 단어들을 집어 넣어 문장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러니 타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타협할 것인가? 어느 정도까지 타협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실 텐데요,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몇 가지 예시를 소개해 드릴 테니, 직접 보시고 “저 정도면 할 만하네”하는 예시에 맞춰 직접 만들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1. 가면 쓴 한국어
이 예시는 한국어의 모든 요소들을 1대1로 옮기는 걸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예산이 더 있었더라면 더 특색 있는 언어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그게 힘든 걸 어떡하나요. 그래서 이 예시는 그냥 한국어를 분해한 다음에 모양만 바꾼 뒤 다시 합쳐 다른 언어’처럼’ 보이게 하는 예시죠. 1막 6장에서 다룬 것과 비슷합니다.

1―1. 조금 더 바꾼 한국어
이 예시는 1막 6장에서 다룬 것입니다. 한국어의 문법적 요소는 그대로 간직하되, 본래 어미나 조사 등으로 쓰이던 것들을 다른 형태의 문법적 요소로 바꿔서 가면만 씌운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간 형태죠. 이게 1막 6장에서 다룬 방법과 똑같은 예시입니다.

2. 버릴 걸 버리면 그래도 달라는 보이겠지
이 예시는 한국어만의 문법적 특징을 싸그리 버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조사든 뭐든 싹 다 버리고 가장 근본적인 것만 남기고, 그걸 번역하는 것입니다. 위 문장을 이렇게 바꿔보면 “(주어)/그러니/한국 + 어 + (목적어)/잘/해체하다 + (시점)/잘/해체하다 + (당위)”가 되겠네요. 그다음에 이렇게 문장의 뼈대만 남은 상태에서 교체하는 거죠. 이러면 뉘앙스 같은 건 다 날아가겠지만 어쩌겠어요. 적어도 한국어랑은 확실히 달라졌으니까요!

2―1. 뼈대에 살 붙이기
바로 위 예시에서 살만 붙이는 겁니다. 물론 살을 한국어식으로 붙이는 건 아니고, 자신이 만든 언어식으로 붙이는 거죠. 예를 들어서 생략된 주어를 추가한다거나, 시점을 언급하는 새로운 방법을 쓴다거나(최상급 표현 등), 당위를 아예 사라지게 한다거나(너무 극단적이네요)! 이러면 제대로 된 문법에 더 가까워지겠죠?

3. 기계의 힘 빌리기
정 안 되면 기계의 힘을 빌려 다른 언어 같은 모습을 낼 수 있습니다. 원하는 문장을 ChatGPT한테 다른 언어로 번역해달라고 한 다음, 그 문장을 문장 성분 별로 나눠달라고 하면 ChatGPT가 똑똑하게 번역도 하고 나누기도 해서 완전히 다른 문법 시스템을 손쉽게 응용할 수 있게 해주죠! 그리고 위의 방법들을 그 결과에 사용하면 한국어와는 더 다른 언어를 만들 수 있겠죠? 그 문법을 이해하기 힘들어도 다시 ChatGPT한테 설명해달라고 하면 되니까요! 뭐, 최악의 결과라고 해봤자 “가면 쓴 ○○어”가 될 뿐이니까요.

어떤가요? 쉽지 않나요? 하지만 위의 방법들을 쓰기에는 너무 양심에 찔린다거나, 그래도 뭐라도 알고서 옮겨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신다면, 기본적인 문법 용어들을 아래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어, 동사, 접속사 같은 단어들이 친숙한 단어는 아니니까요.

먼저 문장 성분과 품사입니다. 이 둘에 대해 다루기 전에 비유를 하나 들죠. 글은 연극입니다. 문장 하나하나는 그 연극의 한 장면이죠. 장면에는 등장인물과 소품이 필요하고, 이들이 나와서 행동을 하죠. 그런데 연극 안의 등장인물과 소품은 현실의 무언가와는 다릅니다. 배우와 그가 맡는 역할은 다르잖아요. 행동도, 주먹을 갖다 대기만 했을 뿐인데 내장 파열 급의 공격인 것처럼 연기할 수 있고, 소품도, 빨간색 공을 가지고 사과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현실의 모습과 연극 중의 모습은 다릅니다.

문장 성분은 연극 중의 모습입니다. 주역, 조역, 악역이 있는 것처럼, 문장 성분에는 주어, 부사어, 목적어 등이 있습니다. 이들 단어의 공통점은 모두 “-어”로 끝난다는 거죠. 그리고 이 배우들이 하는 행동도, 서술어라는 이름으로 부른답니다.

품사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배우들에게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죠. 키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죠. 이렇게 특징별로 배우(단어)들을 분류한 것이 품사입니다. 이런 품사에는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이 있죠.

그럼 유명한 문장 성분과 품사를 알아봅시다! 먼저 서술어입니다. 서술어는 문장의 등장인물(문장 성분)들이나, 이들이 하는 행동을 서술합니다. 서술어는 문장의 핵심이죠. 언어를 불문하고, 서술어만 말해도 문법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뿐 뜻은 다 통합니다. “갈래?”라던가, “도망쳐!”라던가, “예쁜데?”처럼요.

주어는 서술어를 하는 자입니다. 서술어가 “먹다”면 먹는 자이고, 서술어가 “차갑다”면 차가운 자죠. 한국어에서는 “이/가”라는 조사가 붙습니다. 반대로 목적어는 서술어의 영향을 받는 자입니다. 서술어가 “먹다”면 먹히는 자이고, 서술어가 “차갑게 하다”면 차가워지는 자죠. 한국어에서는 “을/를”이라는 조사가 붙습니다. 그런데 서술어가 주어나 목적어 외에 다른 배역(문장 성분)을 필요로 할 때도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국어 학교 문법에 따르면 이들은 보어(서술어가 “되다”/”아니다”일 경우), 필수적 부사어죠. 예시를 볼까요?

“철수가 영희에게 선물을 주었다”라는 문장에서 주어는 철수, 목적어는 선물인데 영희는 뭘까요? 학교 문법에 따르면 영희는 필수적 부사어입니다. 부사어는 원래 꾸미는 말입니다. “영수는 시험을 순식간에 풀었다”라는 문장을 보면, 주어인 영수가 목적어인 시험을 서술어인 풀었는데, 그냥 푼 게 아니라 순식간에 풀었다고 서술어인 풀다를 꾸미는 말이죠. 그러니 “철수가 영희에게 선물을 주었다”의 영희는 서술어인 주었다를 꾸며주니 부사어고, 일반적인 부사어와는 다르게 꼭 필요하니(“철수가 선물을 주었다”라고만 하면 ‘누구에게?’라는 의문이 들죠) 필수적 부사어라고 하는 겁니다.

필수적 부사어의 예시로는 “사과는 빨간 공과 다르다”라거나, “너는 왜 그렇게 생겼냐” 등등이 있습니다. 보어의 예시는 “얼음이 물이 되다”, “얼음은 물이 아니다” 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필수적 부사어, 보어, 목적어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서술어가 ‘필요로 하는’, ‘주어가 아닌’ 문장 성분들이란 거죠. 그래서 저는 굳이 이들을 하나하나 외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아, 주어가 아닌데 서술어가 필요로 하는 거구나’ 정도로만 알아두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언어마다 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이거든요! 직접목적어니 간접목적어니 주격 보어니 뭐니 하면서 헷갈리게 하니, 그냥 싸그리 묶어서 정리해 두는 것이 최선이랍니다!

관형어는 명사를 꾸미는 말입니다. 부사어와 완전히 기능이 똑같지만, 꾸미는 대상이 명사냐 명사가 아니냐로 나뉘죠(명사는 바로 다음 문단에서 다룹니다). 독립어는 그냥 “와!”, “오호?”, “흥!” 같은 것들입니다. 이렇게 하면 한국어의 모든 문장 성분이 다 끝납니다.

다음은 품사입니다. 품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명사죠. 명사를 “끝말잇기에서 쓸 수 있는 말”이라는 독특한 정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사물/개념의 이름名을 나타내는 품사”라는 일반적인 정의를 합시다. 간단한 예시로는 “예시”, “정의”, “품사”, “이름”, “개념”, “사물”, “끝말잇기”… 끝이 없네요!

명사에는 대명사나 수사 같은 하위 분류도 있답니다! 대명사는 명사 자리에 대신代 들어갈 수 있는 품사고, 수사는 숫자죠. 하지만 언어에 따라 이들의 구분이 확실하기도 하고, 딱 안 나눠떨어지기도 하는 경우도 있어서 따로 나눠서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동사와 형용사는 모두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는 품사입니다. 동사는 움직임을 설명하고, 형용사는 ‘어떻게’를 설명하죠(빠르다, 작다, 못생기다 등등). 한국어에서는 동사와 형용사 뒤에 어미가 붙어 추가적인 정보를 전하죠. “빠르다”와 “빨랐었다네요”의 차이를 봅시다. 전자는 단순히 “빠르-“에 아무 의미 없는 기본형 “-다”가 붙은 반면, 후자는 “빠르-“에 “-었/았-“, “-었-“, “-다”, “-네”, “-요” 같이 여러 의미를 더하는 어미가 붙었습니다. 어미가 아닌 부분, 즉 중심이 되는 “빠르-” 같은 부분을 어간이라고 합니다.

형용사 얘기가 나왔으니, 외국어와 한국어 문법의 차이를 봅시다. “걷다”라는 동사는 영어로 “walk”입니다. “빠르다”라는 형용사는 “fast”입니다. “나”라는 명사는 “I”입니다. 그런데 “나 걷다”는 “I walk”인데 “나 빠르다”는 “I am fast”입니다. 형용사가 동사와 유사하게 쓰이는 한국어와 일본어와 달리, 유럽권 언어들은 형용사가 명사나 부사와 유사하게 쓰이죠.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그 언어의 특징을 담고 있는 거고, 번역하는 식으로는 없애기 참 힘든 거랍니다!

관형사와 부사는 다른 품사를 꾸미는 품사입니다! 관형사는 명사(+ 대명사, 수사)만을, 부사는 나머지 다에 여러 품사를 동시에 꾸미기까지 하죠.

조사는 “-이/가”, “-을/를” “-은/는” 같은 것들입니다. 한국어에서 문장 성분을 표시하고, “-은/는” 같은 경우에는 의미를 더하는 기능을 하죠. 여태까지 말 안 하고 그냥 넘겼지만, 해체하기 전에 “-은/는”은 다 떼버리고 “-이/가”나 “-을/를” 같은 걸로 바꿔야 뭐가 주언지 목적언지 알 수 있답니다.

감탄사는… 뭐 말 그대로 감탄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접사와 전치사를 봅시다. 먼저 전치사입니다. 전치사는 다른 언어에서 한국어의 조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어에는 없지만, 다른 언어에 존재하죠. 뒤에 붙는 후치사라는 것도 있답니다.

접사는 ‘어근’의 앞뒤에 붙어 뜻을 바꾸거나 품사를 바꿉니다. 예를 들면 “이성”과 “비이성”, “움직이-“와 “움직임”이 있겠네요. 전자는 어근 “이성”에 접두사 “비-“가 붙었고, 후자는 어근 “움직이-“에 접미사 “-ㅁ”이 붙었네요. 전자는 뜻이 바뀌었고, 후자는 품사가 동사에서 명사가 됐습니다. 어근과 어간의 차이는… 따로 찾아보세요! 여기서는 별로 안 중요할 것 같네요.

추가로 문법 용어를 더 배우고 싶다면 나무위키의 “한국어의 5언 9품사” 문서, “어미” 문서, 나아가 “한국어/문법” 문서를 권해드립니다. 거기에 이걸 읽고 시작점이 되는 한국어 문장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직접 연구해 보시는 것까지 추천해 드립니다. 사실 시간을 아끼고자 하신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긴 하지만, 직접 공부하는 것이 중요해질 때도 있을 테니까요.

그럼 이번 장은 이걸로 마치고, 다음 장, 「언어와 음운」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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