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6장 ― 언어와 음운

언어를 담는 그릇

언어는 무엇일까요? 이미 앞에서 많이 물어본 질문이지만, 이번에는 색다른 대답을 해보겠습니다. 언어는, ‘그릇, 틀, 뜻의 만남’입니다. 

언어에는 먼저 이 언어를 담을 물리적인 ‘그릇’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보통 소리, 즉, 공기의 진동이 그릇이 됩니다. 하지만 몇몇 언어에서는 문자(즉, 그림)가 그릇이 되기도 하고, 손짓과 표정이 그릇이 되기도 하고, 전압의 높고 낮음이 그릇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물리적인 현상이 그릇이 될 수 있죠. 

그리고 이 그릇이 어떻게 조립되는지를 정한 ‘틀’이 있어야 합니다. 이 틀에는 그릇을 어떻게 쌓는지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쌓인 그릇을 어떻게 늘어놓아 진열하는지까지가 다 담겨 있죠. 즉,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문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틀입니다. 

마지막으로 ‘뜻’입니다. 언어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죠. 뜻은 그릇에 담기는 것이자, 틀에 담기는 것입니다. 그릇과 틀에만 담길 수도 있지만, 주변의 상황, 즉 문맥에도 뜻이 담겨 뜻이 커지고, 작아지고, 달라질 수 있죠. 

언어의 세 측면인 그릇, 틀, 뜻은 각각이 하나의 학문 분야가 될 정도로 연구할 거리가 많습니다. 그래서 언어학은 언어학 아래에 많은 하위 분류가 있죠. 보통은 언어학을 음성학,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의 여섯 학문으로 나눈답니다. 하나씩 볼까요? 

음성학은 언어학에서 가장 자연과학에 가까운 학문입니다. 음성학은 음성, 즉 사람이 만드는 소리에 대해 연구하죠. 사람의 혀, 입, 성대, 코 등등이 어떻게 소리를 만드는지, 그걸 뇌가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해 탐구하죠. 

음운론은 물리적인 현상을 뇌가 어떻게 그릇으로 바꾸는지에 대한 학문입니다. 이번 장의 주제기도 하니, 아래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형태론은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릇이 모여서 어떻게 뜻을 담는지에 대해 배우죠. 즉, 그릇이 뜻을 담는 틀을 배우는 학문입니다. 

통사론은 문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단어가 어떻게 나열되어 문장이 되는지, 문장에서 단어 사이의 규칙은 무엇인지를 연구하죠. 흔히 문법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의미론은 단어의 뜻을 탐구합니다. 단어에 어떤 뜻이 담기는지,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을 탐구하죠. 그리고 더 나아가 문장의 뜻도 연구합니다. 단어의 조합이 달라지면 문장의 뜻도 어떻게 달라지는가 같은 질문 같은 거죠. 

화용론은 문맥과 뜻을 함께 보는 학문입니다. 나, 여기, 사과, 배고파는 모두 뜻이 있지만, “나 배고파” “여기 사과”라는 대화에서 단순히 문장에 나는 배고프다, 여기 사과가 있다는 뜻만 담긴 것은 아니죠. 나는 배고프니 해결책을 달라, 여기 사과가 있으니 먹으라는 숨겨진 의미가 들어있죠. 화용론은 철학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학으로, 언어학에서 가장 인문학적인 학문입니다. 

이렇듯 언어학은 자연과학에서 순수철학까지, 넓은 연구 주제를 가진 학문이죠! 하지만 언어학 전반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이번 장의 주제인 음운학을 다뤄봅시다. 

음성학이 아닌 음운론을 다루는 이유는 음성학은 글로만 설명하기에는 힘든 주제기도 하고, 글로 언어를 만드는 창언창안의 독자분들에게는 음성학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음운론은 대체 뭘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말소리인 음운을 대상으로 음운 체계를 밝히고, 그 역사적 변천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되어있고, 위키백과에는 「언어가 음가를, 수어의 경우 신호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정리하는지에 관한 학문」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용어가 한꺼번에 많이 튀어나왔으니, 차근차근 알아봅시다. 

말소리, 혹은 음성은 인간의 발음 기관(즉, 입술에서 성대까지의 다양한 신체 부분들)이 만드는 소리입니다. 말 그대로 말할 때 나는 소리죠. 

음가는 구분되는 말소리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ㄱ]와 [ㅋ]입니다. 

음소(또는 음운)는 한 언어에서 뜻을 구분하는 음가의 묶음입니다. 예시를 들어보죠. [가타카나]라는 단어를 봅시다. 한국인에게 이 단어의 [ㄱ]과 [ㅋ]은 다른 소리입니다. 그러나 일본어로 가타카나는 [カタカナ]로, 일본인은 두 소리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똑같은 문자가 두 번 반복되는 게 보이나요?). 음가는 무수히 많지만, 언어는 그런 음가들을 묶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똑같은 소리야”라고 정의한답니다. 

비유를 들어볼까요? 인간이 볼 수 있는 색깔은 무수히 많죠? 하지만 우리는 색깔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지정해서 말하지 않죠. 보통 빨갛다, 노랗다, 파랗다, 하얗다, 까맣다 중 하나를 말하죠. 무지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지개의 많은 색깔을 일곱 가지로만 나눠서 부르잖아요. 빨주노초파남보로요. 이렇듯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연속적인 범위여도, 인간은 이를 이해하기 위해 비슷한 것끼리 묶어 똑같다고, 똑같진 않아도 충분히 비슷하다고 정의합니다. 

이젠 알 수 있겠습니다! 음운이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말소리인 이유를요! 현실의 말소리는 다양하지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하나의 말소리라고 여기니, 추상적이고 심리적인 말소리인 것이지요. 마치 현실의 색은 다양하지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하나의 ‘빨간색’이라고 여기는 것처럼요. 

간단한 실험으로 이걸 확인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를 계속해 끊김 없이 소리 내봅시다. [이이이이이] 이제 [아]를 소리 내 봅시다. [아아아아아] 마지막으로, [이]에서 [아]까지 입을 서서히 움직이며 이어서 소리를 내봅시다. [이이에에애애아아] 정도가 되려나요? 모든 소리가 다른 건 느끼실 수 있겠지만, 진짜로 다르다고 인식하는 소리는 몇 개이신가요? 

만약 표준어를 정확히 발음하시거나, 연세가 있으시다면 4개라고, 그렇지 않다면 3개라고 여기실 겁니다. 이렇듯 말소리는 연속적이고, 음가는 많지만, 한 언어에서 실제로 나누는 기준에 따라 음소의 개수가 정해지죠. 

음소의 다른 예시를 봅시다. 한국어에는 세 개의 음소, /p, pʰ, p͈/가 있습니다. 영어에는 두 개의 음소 /b, p/이 있습니다(기호가 뭔지는 일단 무시합시다). <비빔밥>이라는 단어는 [비빔빱]이라고 소리가 나지만, 실제로는 <ㅂ>이라고 표시한 소리들은 모두 다른 음가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 <ㅂ>은 사실 [p]이고, 두 번째 <ㅂ>은 사실 [b]이며, 마지막 <ㅂ>은 사실  [p̚]입니다. 그러나 한국어의 음소는 오직 /p, pʰ, p͈/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어에서 이 세 음가는 (한국어 화자 기준으로) 가장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p/ 음소에 속합니다. 반대로, 영어에는 /b, p/의 음소밖에 없기 때문에, [비빔빱]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첫 번째 [ㅂ]도, 마지막 [ㅂ]도, 거기에 [ㅃ]도(얘는 [p͈]입니다), 다 /p/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두 번째 [ㅂ]은 [b]이기 때문에, 영어 화자는 이 소리는 /b/라는 음소에 속한다고 생각한답니다. 

음소와 음성의 차이가 이제는 확실해지셨나요? 그럼 이제 아마 왜 굳이 음소와 음성을 나누는지 궁금해 하시겠죠. 가장 큰 이유는 음소의 또 다른 정의, 바로 「말의 뜻을 구별하여 주는 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표준국어대사전)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물과 불이 있겠네요. [물]과 [불]에서 다른 부분은 [ㅁ]과 [ㅂ]만 있습니다. 그러나 {물}과 {불}, 즉 뜻은 완전히 다르죠. 그러면 [ㅁ]과 [ㅂ]는 뜻을 구별해주는 가장 작은 단위가 되겠네요. 이번에는 제가 불의 ㅂ을 발음하면서 성대를 떨어보겠습니다. 마치 영어의 /b/처럼요. 그러나 한국어 화자한테 이 차이는 들리지 않습니다. 아! 한국어에서 /b/는 구별되는 소리가 아니군요! 

아, 그리고 하나 정리할 것이 있습니다. 대괄호[]는 음가를 뜻하는 기호입니다. 이 안에 있는 것은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죠. 그래서 여태까지 대괄호를 “이 안에 들어있는 글자의 소리를 보라는 의미입니다”라는 약속 아래 이렇게 쓴 것입니다. 슬래시, 또는 빗금//은 음소를 뜻하는 기호입니다. 이 안에 있는 기호(예를 들면 p)가 이 언어에서 음소로 쓰인다는 뜻이죠. 빗금 안의 기호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겠지만, 일단은 이것만 알아두셨으면 해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자, 그러면 이 지식을 언어를 만드는 데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바로 언어 창작의 가장 첫 부분, 소리 모으기에 쓸 수 있죠. 이제 굳이 소리를 모으러 여기 저기 들추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나무위키나 위키백과에서 한 언어를 검색하고, 그 언어가 가진 음소를 보면 되죠. 그러면 바로 그 언어스러운 느낌이 나게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놓쳤습니다. 바로 음소가 어떻게 배열되는가에 대한 규칙이죠. 이건 형태론에 가까운 이야기긴 하지만, 일단은 음운론에 속하니 여기서 한 번에 다뤄보죠. 

훈민정음 언해의 서문을 기억하시나요? 「나랏〮말〯ᄊᆞ미〮 듀ᇰ귁〮에〮 달아〮」라는 이 부분이요. 중간에 중국을 듕귁으로 적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표기를 동국정운식 표기라고 하는데, 그냥 훈민정음으로 중국어에 가깝게 적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듕귁이라는 말은 너무나 어색하죠. 분명 한글로 적었지만, 절대로 한국어가 아닐 것 같은 이 단어. 아니면 샤키라라는 단어를 봅시다. 별로 한국어스럽지 않죠? 분명 모든 소리가 한국어에 있는 소리인데도 말이에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들 단어가 한국어의 음소 배열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어의 음소 배열 규칙은 더 작은 범위에서도 일어납니다. 

1막 팸플릿에서 다룬 음끝규와 한글의 음절 한계를 기억하시나요? 그런게 음소배열 규칙입니다. 하지만 듕귁이 어색한 이유, 샤키라가 어색한 이유는 단순히 이런 음소배열 규칙이 아니라, 말로 정의하기에는 까다로운 다른 음소배열 규칙을 어기기 때문이죠. 마치 ‘본능적’으로 어색하니까요. 

하지만 다행인점은, 언어를 만들 때 이 정도까지는 보통 신경 안 써도 된다는 거랍니다! 그러니 다른 언어의 음소를 가져올 때는 음소와, 간단한 음소배열 규칙만 가져오면 되죠. 한국어를 예시로 들면, 한국어의 음소 28개와, 이들의 불가능한 배열(자음군이나 음끝규) 정도만 가져오면 됩니다. 그러면 그 언어의 분위기는 대충 낼 수 있으니까요! 다행이네요! 

그러면 이번 장은 언어학 전반과 음운론에 대한 입문에서 멈추고, 위에서 넘어간 기호와 모음과 자음과 함께 다음 장인 다음 장, 「언어와 소리」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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