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4장 ― 인명 짓기

언어의 방을 설계해 보자

인명은 고유명사의 꽃이죠! 가장 다양하고, 창작물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니까요. 그러면 인명도 똑같이 예시를 통해 지어볼까요? 그러기 전에 잠깐! 이름은 문화권에 따라 큰 차이가 있으니 그것만 잠깐 짚고 넘어가도록 할까요? 

유교 문화권은 다른 문화권과는 다른 독특한 작명 문화가 있습니다. 바로 이미 있는, 특히 조상의 이름을 절대! 다시는! 쓰지 않는다는 점이죠. 우리에게는 당연한 걸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보면 굉장히 특이하답니다. 예시로 프랑스의 왕들을 봅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목이 날아간 걸로 유명한 루이 16세, 루이 16세가 있다는 말은 루이라는 이름을 쓰는 15명의 다른 왕이 있었다는 말이겠죠? 한국으로 하면 조선의 왕이 이도(세종대왕의 본명) 1세, 이도 2세, 이도 3세… 하고 이도 16세까지 있다는 말이겠죠. 이렇게 보니 어색하죠? 

그리고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문화권은 이름이 보통 정해져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성인의 이름을 따거나, 종교적 덕목의 이름을 따거나, 직업명이나 특징이 이름으로 굳어져 버린 것 중에서 하나를 정하는 경우도 있죠. 이런 점은 이름을 완전히 지어내는 다른 문화권과는 다른 특징입니다. 

이런 다양한 차이를 감안하기 위해 아래의 인명 짓기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1. 이미 정해져 있는 이름, 2. 작명하는 방법. 그리고 부모의 이름을 다시 쓰는 문화권의 경우 어떻게 다시 쓰는지까지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의 경우 마지막 문단에서 다루겠습니다. 

첫 번째 구조 예시: 아가티(Αγάθη)

아가티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좋다, 선하다를 뜻하는 ἀγαθός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영어의 애거사(Agatha)가 더 친숙하실 수도 있겠네요. 이름에 덕목을 넣어 짓는 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보이는 방법으로, 가장 흔한 작명 방식일 수도 있겠네요. 이름으로 아 이름에 무슨 덕목을 넣을지는 문화권마다 다르긴 하지만요. 딱히 더 언급할 것은 없어 보이네요. 이외에도 보리스Борис(늑대, 혹은 설표) 같이 덕목은 아니지만 덕목 같은 동물을 이름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번째 구조 예시: 하인리히(Heinrich)

왜 한국의 판타지 소설에서 하인리히가 헨리보다 많이 등장하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어감 때문일려나요?) 일단 하인리히는 우리나라의 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이건 직책이 이름이 된 경우네요. 라인하트(Reinhardt)는 조언가 + 강한이라는 뜻이고, 하워드(Howard)는 근위대장/경비대장이라는 뜻입니다. 해롤드(Harold)와 월터(Walter)는 둘 다 군대의 주인이라는 뜻이죠. 이렇게 직책을 이름으로 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세 번째 구조 예시: 피터(Peter)

피터는 고대 그리스어 Πέτρος에서 온 말로, 뜻 자체는 돌이란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 이름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성경에서 예수가 열두 제자 중 시몬에게 준 이름이기 때문이죠. 시몬이란 이름은 “그/신은 들었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름이 이런 식인데, 존(요한)은 “야훼는 자애롭다”라는 뜻이고, 대니얼(다니엘)은 “신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 아이작(이사악)은 “그는 웃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외에도 천사들의 이름 미카엘(신 같은 자가 누가 있느냐), 가브리엘(신의 힘), 라파엘(신은 치유하셨다)도 많이 쓰이죠. 이외에도 에이브러햄(아브라함) “만인의 아버지”, 세라(사라) “공주”, 메리(마리아) “사랑받는” 같은 이름도 있습니다. 또한, 종교적 단어를 이름에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티파니(테오파니) “신의 모습 드러냄” 같은 예시가 있죠. 종교 경전에 나오는 이름을 쓰는 현상은 종교가 큰 힘,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문화권에서 자주 쓰입니다. 

첫 번째 작명 예시: 덕목

덕목을 바탕으로 작명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수진 같은 이름이 적절한 예시가 되겠네요. 쓰는 한자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좋은 뜻을 넣고 작명하죠. 이외에도 철수, 영수, 영자 등의 수로 끝나거나 자로 끝나는 이름들도 이런 쪽에 많이 쓰입니다. 첫 번째 구조와 똑같지만 여기서 따로 언급하는 이유는, 전자의 경우 이미 정해져 있는 이름을 쓰거나 일반 명사를 이름으로 하지만, 이 경우엔 완전히 새로운 단어를 만든다는 차이점이 있어서겠네요. 

두 번째 작명 예시: 관계 

가족 관계를 가지고 작명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자주 보이던 작명법이죠. 지금은 일본을 제외하면 잘 안 보이는 것 같지만요… 일본에서도 요즘 이름으로는 안 쓰이지만, 일단은 일본을 예시로 들어 설명해볼까요? 이치로一郞/타로太郞(장남), 지로二(次)郞(차남), 사부로三郞(삼남), 시로四郞(사남), 고로五郞(오남), 로쿠로六郞(육남), 시치로七郞(칠남), 하치로八郞(팔남), 쿠로九郞(구남)으로 쭉쭉 이어가는 이름이 있고, 중국에는 백중숙계伯仲叔季라고 해서 각각 장남(맹孟, 원元도 사용), 차남, 삼남, 사남(아들 수가 넷이 안 되면 막내가 季을 쓸 수도 있음)에게 한 글자씩 붙이는 이름이 있습니다. 오남, 육남에게 유(幼), 치(穉/稚)를 붙이기도 하죠. 두 예시 모두 주어진 글자에 다른 글자를 덧붙여 이름을 짓기도 하죠. 신지로進次郞라는 이름이나 중니仲尼라는 이름이 예시가 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백중숙계는 주로 이름이 아닌 자에 쓰이던 한자입니다. 명과 자의 차이는 나무위키를…) 한국에서 유명한 예시는 말자末子가 있겠네요. 막내딸에게 붙이던 이름이죠(복잡한 역사가 있긴 하지만). 특이한 경우로 후남(後男)같은 이름을 남아선호사상을 지닌 가정에서 여자아이에게 붙이는 경우도 있었죠. 

부모의 이름을 다시 쓰기

부모의 이름을 다시 쓴다곤 썼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문화권이 부계를 따라 이름을 다시 쓰곤 하죠. 이 경우 윗 세대에(부나 조부)에 윗 세대임을 나타내는 단어를, 아랫 세대에(자나 손자)에 아랫 세대임을 나타내는 단어를 붙인답니다. 예를 들어 영어는 시니어Senior/Sr.와 주니어Junior/Jr.를 붙이죠. 한국어로 번역할 때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닌 대/소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이외에도 ~세를 사용할 수도 있죠. 그리고 이런 게 발전하면… 

성씨

성씨는 이름보다 나중에 생긴 것으로, 대개 일종의 식별표의 역할을 했답니다. 동명이인이 있을 때 둘을 구분하는 용도로 발전했다는 거죠. 성씨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아래서 하나씩 다뤄 보겠습니다. 

성(姓)

역사적으로 성은 이름으로부터 분화해 나왔답니다. 앤더슨(Anderson)이란 성을 예로 들어봅시다. 뒤의 슨son은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성이란 것이 원래 아버지가 자식을 인정하는 데 쓰였다는 것을 돌이켜 보면 아버지의 이름을 성으로 쓰는 것이 당연하게 보입니다. 이 과정의 중간 단계에 있는 이름을 부칭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번역할 때 풀어서 옮긴다는 차이점이 있죠. ~~의 아들 아무개로 옮기냐, ~~○ 아무개로 옮기냐의 차이죠. 부칭과 성은 정착했냐 아니냐를 두고 따진답니다. ××의 아들은 ○○ ××〻, 그의 아들은 □□ ○○〻 같이 계속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가면 부칭이고, ××의 아들은 ○○ ××〻, 그의 아들은 □□ ××〻로 고정돼 버리면 성이 된 것이죠. 이렇게 부칭이 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유럽 뿐만 아니라 전세계 각지에서 보이는데, 이 과정이 화석처럼 남은 곳이 북유럽입니다. 스웨덴은 1901년에 부칭을 고정하는 법률을 반포해서 그때까지 이어지던 부칭의 전통을 한 번에 성으로 고정시켰죠. 반면, 아이슬란드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부칭을 쓰고 있답니다. 중국의 성은 특이하게도 고대 모계사회의 흔적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중국 고대 주요 성씨 희(姬), 강(姜), 사(姒), 영(嬴), 운(妘), 규(嬀), 요(姚), 길(姞)에 모두 계집 녀女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하죠. 성姓이라는 글자도 그렇고요. 물론, 후에는 아래의 씨와 합쳐지고 다양한 성이 등장하면서 사라지게 되었지만요. 

씨(氏)

씨는 한국에선 성과 동의어로 쓰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있답니다. 성은 혈연에 따라 정해지는 반면, 씨는 지역에 따라 정해지죠. 성경에 나오는 나사렛의 예수가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예수는 이름, 나사렛은 지명이죠. 이후 “○○ 출신이다”라는 뜻으로 쓰이던 것이 “쟤의 가족은 ○○ 출신이다”으로 의미가 바뀌고 고정되면 씨가 되는 것이죠. 한국의 본관도 씨의 한 종류입니다. 김해 김씨를 예로 들면 김해는 씨, 김은 성이죠. 이제 우리가 성씨라고 합쳐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되셨네요! 그럼 왜 지금은 성씨를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하게 된 걸까요?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권도 마찬가지인데요, 시간이 지나며 무엇이 성이고, 무엇이 씨인지 구분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경우 성씨가 하나의 개념이 되어 누구는 성, 누구는 씨를 쓰게 되었고, 중국과 한국은 성으로 수렴하게 되었고, 일본은 씨로 수렴하게 되었죠. 그래서 일본은 특이하게 성이 지명인 거랍니다. 유럽의 귀족 가문명도 빼먹을 순 없겠죠. 보통 이들은 영지(부르고뉴)나 성城(합스부르크)의 이름을 따 지었답니다. 물론 별명에서 따온 가문명도 있지만(카페), 이들은 적으니 무시하도록 하죠. 

직업

한자문화권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유럽권에선 흔한 것이 직업을 성씨로 쓰는 것입니다. 원래는 제빵사 존, 대장장이 존, 하고 부르던 것들이 성씨 중 하나로 굳어져 버린 것이죠. 이런 성의 예시로는 스미스(Smith, 대장장이), 베이커(Baker, 제빵사), 바우어(Bauer, 농부), 슈나이더(Schneider, 재단사) 등이 있습니다. 위의 직책을 이름으로 쓰는 경우와 비교하면 귀천에 따라 성인지 이름인지가 나뉘는 점이 재밌네요. 반대로 중국에선 사마司馬나 사공司空 같은 고위 관직을 씨로 했답니다. 물론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요. 

이렇듯 성씨는 그 기원이 다양하고, 다른 단어를 그 토대로 삼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지식들을 바탕으로 이름과 성씨를 지어줄 수 있겠죠? 이외에도 나무위키의 이름작명성씨 문서를 참고해 보는 것도 좋답니다! 그럼 다음 장, 단체명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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